칼빈과 한국교회의 변혁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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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과 한국교회의 변혁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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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2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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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엽목사<기독교정화운동 대표>


한국 교회의 변혁문제는 영원한 지속적 숙제일 것이다. 개혁주의라는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교회의 혁신은 언제나 항상 그리스도께서 주장하신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에 서울교회에서 열린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 논문 발표는 큰 의미를 갖는 동시에 우려도 갖는다고 본다. 각 분야별로 심혈을 기울여 칼빈의 근본 사상을 검토하고 칼빈의 사상 검토를 통하여 한국 교회의 신학적 또는 교회적 변혁과 발전을 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칼빈의 사상을 면밀히 검토한다고 하는 미명하에 너무나 칼빈의 학업적 업적에 중점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여기 저기서 이제는 한국적 신학도 나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는 소리들이 들리고 있는데 언제까지 외국의, 특별히 한 사람만의 신학에 매달려 종속적 신학의 행태에서 만족하려 하는가 이다.

또 한가지는 칼빈을 너무도 중요시 하는 대신 칼빈신학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칼빈 혼자 개혁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특히 칼빈에게 있어서는 항상 생명의 위협과 환경적 곤란들이 그를 억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령 카톨릭의 종교적 상황이라면 우선 교회의 우위성을 통한 교황권의 무흠 지고선적 입장이며 이것은 결국 성경의 중요성을 간과함으로써 여러가지 구속적 혼란의 신앙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것, 또한 선행 구원론인데 이 선행구원론은 결국 그리스도의 유일한 십자가 보혈의 구속적 의미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교적 미신신앙에의 치달음이다. 당시에는 신앙이 거의 미신적이었다. 한 예로 프란시스가 수족과 옆구리에 성흔이 돋았을 때 프란시스의 옷 자락 한 조각이라고 베어가려고 아우성을 쳤던 예의 전통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칼빈의 냉철한 신학은 날카로우면서 합리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한 성령의 신학자였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이성적 분별과 신학적 예리성으로 카톨릭에 맞서야 했었다. 자연히 칼빈의 신학은 반 카톨릭적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이며 오직성경의 사상이다.

우리가 만일 칼빈을 우상시 한다면 자연히 이신칭의와 성경제일주의에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오늘 날 고스란히 한국교회의 체질을 이루어서 칼빈이(성경도) 그렇게도 강조했던 신율법주의(그리스도론적)를 소홀이 하는 우를 범하는 결과가 아니었던가? 오늘날 한국 교회의 맹점은 말씀, 계명을 지키기를 소홀이 하는 전통에 있다. 또한 이는 결코 칼빈에게 있지 않다. 칼빈을 우상시 하는 그 맹점에 있다. 칼빈의 약점은 성령을 생활화 하는데 대한 방법론의 빈곤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우리가 만일 계명 말씀을 지키려고 애쓴다면 반드시 실천 불가능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바울 사도의 인간의 전적 타락의 사상이다.

또한 바울(성경)에 의하면 이는 성령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영성적 신학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영성은 성령론만이 아니고 인간의 영적 소질만도 아닌 양자의 접합점이요 관계성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여기서의 하나님과의 동행이며 순종이며 이룸이다.

한국 교회는 이 영적 유산으로 시작하여 영성적 신앙의 부흥으로 발전하여 왔다. 그러나 현재는 이 유산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유산의 담당자로써 자처하는 부흥사들은 돈맛에 길들여져 있고 신학자들은 타성에 젖어 신학적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교계 인사들은 과시적 선전주의에 빠져있어서 통계적 수치를 높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적 유산을 돌이켜 보고 골방으로 들어가 가슴을 치며 반성을 하여야 한다. 주여 어떻게 하여야 한국 교회를 중흥시키겠나이까? 하고 통곡하며 하늘의 새로운 시야를 얻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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