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 총회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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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 총회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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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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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목사<예장총회 기획국장>


매 7년 마다 한번 씩 열리는 세계교회 협의회의 총회는 그때그때 세계와 교회를 향한 메시지를 찾아내고 지나간 프로그램들을 평가하고 새로운 사업들을 구상하는 본래적인 목적과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이 당면한 위기를 구조적이며 신학적인 개혁을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총회였다.

특별히 주제를 통해서 말해주는 세계와 교회를 향한 신학적이며 목회적 방향성은 회원교회들에게 일치된 교회로써의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었다.

이번 총회는 재난과 폭력적 갈등과 온갖 고난과 억압의 상황들에 대한 각 교회들이 가지는 매일 매일의 외침을 듣는 시간이었다. 그 외침들에 응답하기 위하여 개인적인 삶의 자리에서, 각 나라의 형편에서, 사회와 교회의 상황들로부터 변혁을 위한 증인되고자하는 몸부림을 보여주는 총회이기도 했다.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한 요구에 답하는 총회였고, 폭력극복 10년(2001년 - 2010년)의 중간 점검 시점으로 다시 한 번 폭력 극복을 위한 우리들의 다짐을 새롭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세계 경제 정의를 이루기 위한 예언자적인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관한 인식과, 타종교간의 대화에의 참여와, 남성 여성, 그리고 다른 세대 간의 평등한 참석을 격려하는 등등의 결정들이 공동의 문서들 속에 반영되어졌다.

총회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로는 “Consensus Decision Making”을 들 수 있겠다. 이 방법은 다수에 의하여 결정되는 다수 의결의 방법이 아닌 만장일치의 결정을 추구하는 방법이었다. 동방정교회가 자체의 결정 방법이기도 한 이 ”Consensus Decision Making”을 제안하고 적용 방법을 큰 규모의 회의에 맞도록 고쳐서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회의의 진행은 “Hearing session” 과 ”decision making session”으로 나뉘고 의사결정과정에서 총대들에 한하여 지급된 세장의 다른 색깔 카드로 의견을 표시하고 발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세장의 카드는 오렌지, 파란색, 그리고 노란색이었다. 오렌지색은 제시된 의견에 대한 친밀한 느낌, 찬성을 표시하고, 파란색은 차갑고, 다른 의견을 표시하는 것으로 쓰였다.

투표를 포함한 몇 가지 의사결정의 순간에는 의장이 “노란카드를 보여 달라”고 주문하게 되고 노란색 카드는 찬성과 반대 양쪽에 투표하는데 쓰여지는 것이었다. 시간이 걸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의사결정 방법은 그러나 앞으로 더욱 발전, 보완해야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에큐메니칼 대화는 이번 총회에 새롭게 도입한 중요한 프로그램이었다. 22개의 에큐메니칼 이슈들을 중심으로 모든 참가자들이 각각의 주제별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또한 뮤치라오(포루투갈 어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를 회의 기간 중에 회의장 주변에서 열리도록 했다.

이 뮤치라오는 각각의 회원 교회들이 가지는 문제들과 알리고 싶은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는 장이었다. 한국교회를 대표해서는 기장청년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뮤치라오에 참여 했고, 예장의 남상도 목사가 대안 농업의 뮤치라오에 참여하여 한마음 공동체를 소개하였다.

이외에도 너무 많은 일들이 총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회원교단 대표들 간의 친교와 앞으로의 Partnership program들에 관한 의견교환과 지역모임들에 대한 논의들,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에큐메니칼 운동 자체의 변혁에 관한 이야기들이 장내에서 장외에서 수없이 이루어졌다.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이제는 단순히 중앙위원이나 실행위원, 혹은 어떤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 지는 총회였다. WCC가 가지는 에큐메니칼 사역에 겸손하게 동참하고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물결을 사심 없이 한국교회 안으로 소개하고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의 요청에 응답해야할 시기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아직도 몇몇 소위 말하는 에큐메니칼 명망가들에게 너무 치우쳐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생겼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과격하고 진보적인 것만은 아니다. 에큐메니즘은 교회의 본질과 소명,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에 관한 질문들에 대한 우리들의 고민이고 기도이다.

앞으로도 이런 7년에 한번씩 열리는 회의에 관하여 외형적인 관심에만 그칠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관심해야할 교회의 책임에 민감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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