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오준화의 리더십 특강: 인성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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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오준화의 리더십 특강: 인성계발
  • 윤영호
  • 승인 2005.09.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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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새사람을 입자        

며칠 전 길을 지나다 우연히 군에서 같이 근무한 선임 소대장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주고받다 같이 생활했던 동료, 지휘관, 부대원들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주제가 옮아갔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나 자신이 한 지휘관을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그의 행위와 잘못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을 되새기자 마음속으로부터 분노가 솟아오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용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했다.

  

지난주는 추석을 맞아 모처럼 고향에서 친척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줄 안다.  반면 가족이나 친척에게 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도 찾아가지 않거나 아예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은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가족 간에도 용서를 베풀지 못해 미워하고 싸우며 분노를 품고 지내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다.  가족 간에도 이런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용서 못하고 아예 관계를 끊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겠다.   

  

용서는 “내게 잘못한 사람들에 대한 원한을 품지 않고 그 기억을 지우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용서를 받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의 용서는 보다 힘든 과정을 거친다.

면밀히 말해 크리스챤이 완고하게 용서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가 동료들을 용서하지 않을 아무런 권리도 없다.  성경은 먼저 용서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똑같이 용서하라고 분명하게 명령하고 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엡4:32).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죄 많은 나를 용서한 일’이 아닌가 싶다. 



용서는 하나님의 품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믿는 자들이 용서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이라 할 수 있다.  더하여 용서하지 않는 행위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죄로 여겨야 한다. 

리더와 신앙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용서의 품성은 인간적으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항상 은혜의 거울에 용서 받은 나 자신이 비추어져야만 해결될 수 있다. 

   

Samuel Johnson은 용서하는 것을 ‘시간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불필요한 고통으로 지내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하였다.  용서하지 않으면 누구보다 용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불필요한 고통 속에서 지내게 된다.  남이 지은 잘못을 용납하는 것이야말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옷 입으라는 명령에 대한 순종이라 할 것이다.(엡4:22-24)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앞으로 이런 결심을 세워보도록 하자. “용서를 빨리 하겠다. 나의 잘못을 감추지 않고 용서를 구하겠다.  오래 참겠다. 복수하지 않겠다.  나를 상하게 한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겠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겠다”(골3:12-13) 



이런 다짐과 실천을 통해서 용서하지 못했던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용서의 새사람”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나에게도 아직 분노의 잔재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용서하지 못한 찌꺼기가 남아있는 것이다.  당장 무릎을 꿇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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