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자’ 중심이었던 단기선교 반성… 관계 형성에 초점 맞춰야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굳게 잠겨있던 국경이 개방되면서 막혀있던 둑이 트이듯 해외여행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와 함께 단기선교 여행도 답답했던 족쇄를 풀었다. 지난해부터 차츰 회복되기 시작한 단기선교 여행 참여 숫자는 올해 완전히 기지개를 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단기선교 여행이 다시 가능해졌다고 해서 이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안일한 모습은 곤란하다. 21세기 단기선교위원회 위원장 황예레미야 목사는 “이전의 단기선교에 대한 반성 없이 과거를 반복하는 것은 단기선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보다 끔찍한 일”이라며 “이제 준비되지 않은 선교팀을 환영하는 곳은 없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이에 미션파트너스(상임대표:한철호 선교사)와 21세기 단기선교위원회는 지난 11일 ‘코로나 이후 단기선교,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단기선교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는 코로나 이후 단기선교 전략, 선교지 현장에서 원하는 단기선교, 뉴미디어와 전문성을 활용한 단기선교, 국내 이주민 단기선교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됐다.
이전과 같은 방식은 안 된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 시동을 건 단기선교는 잠깐 주춤한 적은 있을지 몰라도 하향 곡선을 그린 적은 없었다. 한창 단기선교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울 때는 한해 약 10만 명의 성도들이 단기선교 여행을 떠난다고 추산될 정도였다. 그랬던 단기선교 열정에 제동을 건 것이 바로 코로나19 사태다. 2020년 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여름에 계획됐던 단기선교 일정을 줄줄이 취소해야만 했다.
의도치 않았던 휴식기는 역설적으로 그동안의 단기선교 활동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조명순 선교사(한국형선교개발원)는 “분명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무분별한 단기선교 여행으로 인한 가슴앓이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라면서 “코로나 기간 동안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단기선교 여행을 떠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이 흐름은 막을 수 없다. 다만 이전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도록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전제는 이전 방식에 대한 분석이다. 지역교회나 단체의 자원만으로 역부족이라면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 지킬 것과 달라져야 할 것을 목록화해 각 교회의 특성이 담긴 새로운 단기선교 여행 프로그램을 창출해야 한다.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단기선교 여행을 해야만 하는 목적’을 세우고 그에 맞게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수정 보완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조 선교사는 또 “어설픈 한국 문화 소개나 흉내는 유치할 수 있다. 한류는 이미 우리 생각보다 더 선교 현장에 잘 알려져 있다. 행사 위주의 단순한 프로그램이 현지 교인에게 어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단기선교의 목적이 선교지를 섬기는 것에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선교지가 원하는 단기선교
“한국 단기선교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대만에서 열린 ‘단기선교 아시아 포럼’에서 대만인 선교지도자가 솔직하게 밝힌 폭탄 선언이다. 이유인즉슨 대만도 오랜 기독교 역사와 많은 교회가 있음에도 한국 단기선교팀은 마치 미전도 종족이나 후진국을 대하듯 무례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교지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한국형 단기선교’가 실제로는 선교지에서 환영받지 못했을 수 있다는 점은 한국교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교지 현장에서 원하는 단기선교팀’을 주제로 발제한 최주석 선교사(GP선교회)는 “아시아 국가와 한국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현지인들로부터 한국 단기선교팀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많이 접했다”며 “상향적 위치에서 가르치려 들고 문화적 우월감을 드러내려 하는 것, 행사나 공연 위주로 보여주기에만 집중하는 것, 밥도 따로 먹고 차량도 따로 타고 다니는 등 현지인들과 융화되려 하지 않는 모습, 현지 문화를 무시하는 모습, 늦은 시간까지 시끄럽게 활동해 이웃에 불편을 끼치는 것 등이 주된 부정적 평가였다”고 지적했다.
단기선교팀이 실수를 남기고 가면 현지 교회는 몸살이 난다. 한동안 현지 교회 성도들이 시험에 들어 떠나거나 주변 이웃들에게 교회가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다. 한 번은 단기선교팀이 교회를 숙소로 사용했는데 늦은 밤까지 기도하고 찬양하고 게임을 하는 등 소란스러워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한 일도 있었다. 이후 나비효과가 되어 단기선교팀이 돌아간 이후에도 주일 예배가 시끄럽다며 경찰이 출동하는 바람에 교회가 옮기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선교지 현장에서 원하는 단기선교팀의 모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앞서 언급한 부정적 평가를 반대로 하면 된다. 가르치지 말고 배우고, 현지인과 함께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현지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최 선교사는 “현지인들은 단기선교팀에게 대단한 퍼포먼스를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 친해지고 함께 하길 원한다. 관계성 형성이 이뤄지는 것이 먼저고 지역의 불신자를 향한 전도는 차후의 문제다. 물론 선교 왔으니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관계 형성도 없이 무턱대고 이런 프로그램을 할 테니 사람을 모아놓으라고 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단기선교를 위한 새로운 도구
어설프게 준비했던 부채춤과 태권도는 이제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됐다. 달라진 시대에 맞춰 단기선교 여행에도 새로운 도구들이 활용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차요셉 선교사(나누밴드 미니스트리)는 “단기선교 여행에 있어 사역보다 중요한 것은 현지인들과의 교제다. 그곳에서 소중한 한 사람의 영혼을 만나고 돌아와서도 지속적으로 교제하며 복음을 나누고 기도할 수 있다면 이보다 멋진 선교의 열매는 없을 것”이라며 “이런 멋진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가 바로 SNS”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 “이전엔 우리가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양한 집회와 사역, 공연을 준비했다면 이제는 그곳에서 배우려는 마음으로 향했으면 좋겠다. 뉴미디어를 활용하면 현지 선교사, 그리고 현지 성도들과 미리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고 현장 분위기를 배울 수 있다. 그들의 필요를 나누고 공부하며 문화와 삶을 이해하는데도 좋은 도구로 사용된다. 뉴미디어를 이용해 선교지 공동체와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간다면 우리의 삶도 선교적 삶으로 연속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지금 배우고 있는 전공과목, 그리고 종사하고 있는 전문분야를 단기선교 여행에 활용할 수도 있다. 김진협 선교사(전 게인코리아 해외사역팀장)는 “비기독교인들조차도 자신의 지식과 전공, 직능과 재능을 활용해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으로 들어가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선교지는 우리가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전공과 직능이 활용될 수 있는 현장”이라며 “전문분야를 선교에 활용한다면 선교지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음은 물론 우리 자신도 전공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직능을 갈고 닦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가하면 꼭 해외 선교지로 나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단기선교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이주민들에게 시선을 돌려 우리의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국내 이주민 단기선교’를 제안한 유근영 선교사(대청글로벌미션센터)는 “해외로 단기선교 나갈 때 그 지역 선교사와 연락하며 준비하듯 국내 이주민 단기선교 역시 현장 사역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철저히 계획해야 한다”면서 “특별한 프로그램보다 단기선교를 통해 이주민과 지속적인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 한국어 교실, 논문 작성을 돕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이주민 선교는 국내 사역으로 끝나지 않고 확장될 가능성 또한 품고 있다. 한국에 있는 이주민 대부분이 일정 기간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유 선교사는 “그들이 다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 이후에도 친밀감이 이어지고 지속적 관계를 이어간다면 복음 전파에 있어 큰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황예레미야 선교사는 ‘내부자 중심의 동반자 선교’를 제안했다. 그는 “먼저 가는 자 중심의 선교를 멈춰야 한다. 한국팀의 일정에 맞춰 선교지를 찾아가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선교팀 맞이를 위해 동원하는 것은 사실 무례한 것”이라면서 “그동안 한국교회는 선교지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단기선교팀은 어떤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전에 현지인들과 어떤 장기적 관계를 맺을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