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암 딛고 교정하는 은혜교회 박효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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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암 딛고 교정하는 은혜교회 박효심 목사
  • 승인 2004.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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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따를 뿐이죠”

박효심목사(은혜교회)가 감옥에 갇힌 재소자들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8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이다. 담임목사를 따라 평신도 집사의 신분으로 처음 시작한 교정선교는 두렵고 떨리는 경험이었다.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에게 마지막 만찬을 대접하고 그들의 영혼구원을 기도하는 목사님의 모습에서 ‘나도 저 불쌍한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간절했다. 그뿐이었다. 그 일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될 줄을 미처 상상도 못했다.

평소 편도선이 약해 수술을 받았던 박효심목사는 87년, 병원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는다. “후두암입니다. 3개월 정도밖에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살 수 있는 확률은 15%밖에 되지 않아요.” 목이 따끔거리고 음식 맛을 못느끼고 잘 먹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것이 암이었을 줄이야….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밖엔 없었다. 당시 나이 37세.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을 두고 이대로 세상을 등질 수는 없었다.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산리기도원을 찾았다.

“하나님 제발 이 한 목숨을 살려만 주신다면 주님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아직 어린 자식들을 두고 갈 수가 없습니다.” 남편도 친정엄마도 모두 기도원에서 하나님께 애원했다. 사실 그녀의 기도보다 친정어머니의 기도가 훨씬 뜨거웠다. “아이고 하나님, 제발 살려 주세요. 이 딸을 살려 놓으시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원대로 쓰세요. 살아만 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쓰시던 상관없습니다.”

기도로 후두암을 극복하다

온가족이 모여 눈물로 기도하길 몇 날, 물 한모금 마실 수 없어 예배실로 업혀오던 그녀를 불쌍히 여긴 것일까.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부흥강사가 그녀의 등에 손을 얹고 큰 소리로 안수했다. 그 순간이었다. 뜨거운 불덩이가 등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아, 살았구나.’ 그녀는 살아났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병원에서 조차 포기했던 생명. 박효심목사는 그렇게 다시 새 생명를 얻게 되었다.

새생명을 얻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방배동 기독신학교에 등록해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일을 하며 은혜를 갚아나갈 차례. 그 때 그녀의 귀에는 “교도소 선교를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평신도때부터 찾아다녔던 교도소는 그녀에게 더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각오가 되어있는 박효심목사는 새 삶을 얻은 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선교자로 살고 있다.

청송교도소, 영등포교도소, 청주 여자교도소 등 전국 각지를 누비며 하나님을 모른 채 세상의 어두움 속에서 살았던 이들에게 그녀의 메시지는 큰 희망이 되고 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처럼 그녀 역시 세상은 버려도 차가운 감옥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불쌍한 영혼을 버릴 수는 없었다. 재소자들을 찾아 기도해주고 상담하고, 무연고 재소자들에게 영치금과 간식을 넣어주는 것, 모두 자비량이다. 교도소까지 갔다 돌아오길 하루. 집에 돌아온 그녀에겐 재소자들의 편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강한 메시지로 수천명의 재소자 앞에서 복음을 전하면 더 큰 선교효과가 있겠지만 그녀에겐 목사안수가 없었다. 신학을 공부했지만 목사안수를 받을 수 없었던 그녀는 교단을 옮겨 대학원을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전도사로 교정선교에 나서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집회를 인도하고 축복기도로 예배를 마치려면 목사안수가 필요했다. 강단의 권위가 있어야만 선교도 원할히 할 수 있었다. 안수 후 더 적극적으로 교정선교에 뛰어든 박효심목사는 한달에 한 차례씩 교도소 집회를 인도한다. 집회방문을 한번 할 때마다 1백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선교회도 조직하지 못했고 뚜렷한 후원처도 찾지 못해 매번 선교비는 그녀의 주머니에서 나간다. 그렇게 선교에 투자한 돈이 집 두 채 값은 넘는다. 그러나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어린 자식들에게 통닭한 마리 못사주고 예쁜 옷 한번 못입혔지만 가족이 없는 재소자들이 춥고 배고프게 겨울을 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이 박효심목사의 마음이다. “일대 일로 만나보면 악해보이는 사람은 한명도 없어요. 모두 선하고 착한 사람들인데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되다 보니 한번 실수로 죄를 짓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장 큰 보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눈물로 회개하고 성령을 체험했을 때, 그 때의 기분은 이루 설명할 수가 없어요. 어머니의 사랑을 변변히 받아보지 못한 재소자들은 저를 어머니처럼, 또는 누이처럼 믿고 따릅니다.”

그 사람의 죄를 묻지 말라

교정선교에는 꼭 지켜야할 한가지 원칙이 있다. 재소자의 죄명을 묻지 않는 것. 목회자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죄목을 알면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저 불쌍한 영혼이고 구원의 대상이라는 생각만 가지면 된다. 십자가 죽음 앞에서 강도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죄를 묻지 않고 용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많지요. 교도소 수감후에 병까지 얻었던 한 여자재소자는 저를 보자 부둥켜 안고 울었지요. 함께 기도하면서 눈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출소후에도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안타까운 것은 전과자를 외면하는 사회분위기가 그들을 다시 교도소로 몰아 놓는 다는 것이죠. 교도소에서 교정이 되어도 나와서 갈 곳도 살 곳도 없답니다. 그러다보니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기도 하죠. 범죄가 악순환되고 있어요.” 박효심목사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도 한다. 신앙상담으로 마음을 잡아주고 거할 곳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물론 출소 후에 박목사를 찾아와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믿을 만큼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이 더 많다. 그것이 그녀가 교정선교를 계속하는 이유다.

교정선교를 5년이상 지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목사니까 뭐 힘든 일이냐고 쉽게 말하지만 눈 앞에 결실을 볼 수 없고 끊임없이 주기만 하는 교정선교야 말로 딜레마가 가장 많은 선교분야 중 하나다. 하지만 그 길을 박목사는 20년을 걸어왔다. 여자니까 오히려 더 잘 할 수 있었다며 환히 웃는 그의 얼굴은 그늘하나 없이 해맑기만 하다. “죽음의 고비를 넘겼잖아요. 지금 사는 인생은 제 것이 아니죠.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립할 수 있을때까지 한 10년만, 아니 5년만 더 살게 해주셔도 원이 없었을텐데 이렇게 살아가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아이들이 잘 커준 것도 감사하고 남편이 제 사역에 기도로 후원하는 것도 감사하고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죠.”

박목사는 후두암에 걸린 이후 음식을 먹어도 맛을 잘 모른다. 그리고 침샘에서 침이 나오지 않아 수시로 물을 마시며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기도를 시작하면 물한모금 없어도 8시간 이상 기도할 수 있다. 바로 성령의 힘이 그런 것이 아니겠냐며 웃음 짓는다.

출소후 함께 살 사랑방 소망

하나님의 품에서 잘 자란 아이들은 지난해와 올해 모두 제 짝을 만나 둥지를 틀었다. 새로 시집오는 며느리에게 옷 한벌 해입으라며 단돈 몇 십만원도 쥐어주지 못했다. 박목사는 그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도 알고 있으니까요. 하나님이 제 생명을 구해주셨다는 것을…. 별 불평없이 잘 자라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늘 미안함이 남아 있네요.” 아직까지 사랑이 메마르지 않은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이웃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이웃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사회가 외면한 범죄자들에게 사랑을 손길을 전하는 것은 그저 형식에 그치기 쉽다. 우리가 할 일은 감옥에 갇혀 사회의 관심밖에 놓인 재소자들도 우리가 구원하고 돌보아야할 이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한 영혼씩 책임지고 편지라도 해주면 좋겠어요. 면회오는 사람도, 편지를 주는 사람도 없는 무연고 재소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들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고 선교의 손길을 내밀 때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남을 받겠죠.” 박목사에겐 더 큰 꿈이 있다. 출소한 재소자들과 한 살림을 하는 것. 그것이 꿈이다. 사회로 돌아왔지만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이들을 직접 데리고 살면서 사회적응의 기회를 주는 그런 사랑방을 운영하고 싶다. 10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던 이들에게 세상은 낯설다. 그리고 춥고 외로운 곳이다. 그런 이웃을 박목사는 품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께 용서받은 강도처럼 천국을 소망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교정선교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이현주기자(lhj@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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