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배후에 더 강력하게 존재하시는 분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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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배후에 더 강력하게 존재하시는 분은 ‘하나님’
  • 박찬호 교수 백석대
  • 승인 2024.04.3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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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_ 55) 도덕적 논증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신이라고 하는 개념의 정의를 통해 신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존재론적 논증이라면 그에 비하여 우주론적 논증이나 목적론적 논증은 귀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감각으로 보이고 경험할 수 있는 후험적인 논증을 전개하고 있고 눈에 보이는 결과로부터 원인이나 목적을 거슬러 추론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목적론적 논증은 우주론적 논증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증명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진술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어느 곳에서나 지성과 질서와 목적을 드러내며, 따라서 이러한 세계의 산출에 적절한 지성적이고 목적적인 존재가 있음을 암시한다. 칸트는 이 증명을 다른 세 가지 증명 가운데서 최고의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이것이 신의 존재나 창조주를 증명한다고는 주장하지 않고, 단지 세계를 형성했던 위대한 건축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이 증명은 우주론적인 증명보다 우월하다. 그것은 후자에서 진술되지 않은 것, 즉 세계가 지성과 목적의 증거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의식적이고 지성적이며 목적적인 존재의 실재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증명은 이 존재가 세상의 창조주였다는 사실을 반드시 동반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논증(The Moral Argument)을 살펴보자. 칸트는 정언적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에서 출발하였으며, 그것으로부터 입법자와 재판관과 같이 인간에게 명령할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어떤 존재의 실재를 추론했다. 그는 이 도덕적 논증이 다른 어떤 증명들보다도 훨씬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칸트는 바로 이 증명에 의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시도했다. 이 증명은 거룩하고 정당한 존재의 실재를 지시하는 반면, 하나님이나 창조주 혹은 무한한 완전함의 존재에 대한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도덕적 논증을 주창한 대표적인 사람이 C. S. 루이스(C. S. Lewis, 1898~1963)이다.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보좌관으로 있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후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게 된 찰스 콜슨(Charles Colson, 1931~)은 자신이 기독교인이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감옥에 있던 찰스 콜슨에게 톰 필립스라는 그의 친구는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를  넣어 주었다. 이 책을 통해 콜슨은 생애 처음으로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강력하고도 지적인 논증을 발견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기독교로 회심하는데 가장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하였던 하나님이 존재하시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루이스의 책에서 찾게 되었다: 수세기 동안 여러 다양한 문화권에 존속했던 규례와 가치들을 영속화한 것은 인류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류는 온 힘을 기울여 규례와 가치들을 파괴하고자 노력했다. 법이란 본래의 성격상 사람들을 억제한다. 따라서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배후에 더욱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힘이 바로 하나님이다 (『한 지성인의 회심』, 6).

이성적인 논증들을 평가할 때, 우선 신자들에게는 이 증명들이 필요없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우리의 믿음은 논증들이 아닌,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성적 증명들 위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인정하기를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증명들을 불신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사용할 때, 이러한 논증들 중 어떤 것도 불신자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칸트는 어느 누구보다도 이것들을 가장 불신하였다. 그의 시대 이후로 많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이것들을 전혀 가치 없는 것으로 내어버렸지만, 이 논증들은 오늘날 다시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상당히 만족스러운 암시들을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전혀 가치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들은 신자들 자신에게는 다소 가치가 있으나, 증명들이라기보다는 증언(testimonia)으로 불려야 한다. 이 증명들은 하나님의 일반 계시에 관한 해석들로서, 또한 신적인 존재에 관한 합리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중요하다. 게다가 이것들은 적을 만났을 때 약간의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 논증들은 의심의 가능성을 넘어서 동의를 강요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지는 못하지만, 강한 개연성을 확보하도록 해석되어서, 많은 불신자들을 잠잠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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