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자신을 ‘지우는’ 목사들…세워줄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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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자신을 ‘지우는’ 목사들…세워줄 순 없을까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3.03.2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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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은퇴목회자의 삶과 딜레마①무료한 일상과 정체성의 문제

고신 서울포럼, 지난 23일 ‘목사직의 은퇴와 준비’ 주제로 열려
고신대 이현철 교수, 은퇴목회자의 최대 딜레마로 ‘정체성’ 언급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가속화됨에 따라 목사직의 은퇴와 준비에 대한 교계 차원의 관심도 요구되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가속화됨에 따라 목사직의 은퇴와 준비에 대한 교계 차원의 관심도 요구되고 있다.

 

“사실 시골 목회를 하고 은퇴하니까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사회 생활한 사람들이랑 달리 목사는 정말 할 게 없어요. 아마 많은 분이 동의하실 텐데 시간에 대한 문제가 참 힘들어요. 일상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은퇴목회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료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기저에는 ‘목회자’라는 정체성에서 오는 딜레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예장 고신 서울북부노회(노회장:송성규 목사)가 주관한 제12회 서울포럼이 지난 23일 양주새순교회당(담임:최영완 목사)에서 ‘목사직의 은퇴와 준비’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고신대 이현철 교수(기독교교육학)는 ‘한국교회 내 은퇴목회자의 삶과 딜레마’란 제목으로 발제했다.

이 교수는 “시간 활용에 대한 고민은 연구에 참여한 대부분의 은퇴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라며 “신체적으로는 고령화 단계에 이르러 역동적인 활동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며, 사회적으로 여전히 ‘목사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평신도 은퇴자들과 같이 새로운 직업군에 대한 도전을 수행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은퇴 후에도 ‘목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경향이 이같은 딜레마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은퇴목회자들은 은퇴 이후에도 모양과 성격은 다르지만, 목사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바라보고 있었다”며 “그러나 목사로서의 정체성과 가치가 은퇴 이후에 건강하게 발휘되고, 자연스럽게 은퇴 이후의 모습에서도 표출될 수 있는 장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런 딜레마는 은퇴목회자의 배우자들에게서도 유사한 맥락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쉽게 말해 목회자에 ‘성직’의 의미를 강하게 두는 한국사회의 정서상 양로원에 가더라도 교인들 혹은 이들이 목회자(또는 목회자의 아내)임을 아는 주민들과 허물없이 ‘고스톱’을 치기도 어렵다는 것.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목회자로서의 정체성 유지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평생을 살아온 이들로서는 당연한 생각일 것이나 은퇴 이후의 상황에 걸맞은 방향성과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은퇴 후 ‘출석 교회와의 관계성’도 상당한 딜레마 요소다. 은퇴목회자도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예배 드리며 은혜를 누릴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한 명의 크리스천으로서 편하게 주일 예배를 참석할 곳이 사라져버렸다는 연구 참여자들의 토로가 상당히 많았던 것. 이 교수는 “은퇴목회자들은 출석하는 교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담임 목회자와 교역자들에게 부담이 되어서도 안 되며, 성도들로부터도 지나치게 관심과 존경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눈치’를 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런 측면에서 출석교회의 담임 목사와의 관계성은 중요한 요소로 드러났는데, 은퇴자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장 고신 서울북부노회가 주관하는 제12회 서울포럼이 지난 23일 양주새순교회당에서 열렸다.
예장 고신 서울북부노회가 주관하는 제12회 서울포럼이 지난 23일 양주새순교회당에서 열렸다.

이 교수는 특히 “은퇴목회자와 그의 배우자들은 여전히 건강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지만 은퇴 후 사역의 장이 사라지고, 후배들과 교회를 향한 ‘덕’을 세우기 위해 자신들을 ‘지우는’ 과정을 보내고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딜레마를 극복할 방안으로는 △은퇴 이후 삶과 관련한 체계적 준비 방안 마련(교육 프로그램 및 세미나, 포럼 등)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에 반하지 않는 활동과 사역을 위한 장 마련(무목교회 설교지원 및 성례 집행) △은퇴목회자 및 배우자들 간의 네트워크 마련 등이 거론됐다.

한편 이번 발제는 이 교수가 지난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연구는 은퇴목회자 및 현장목회자 15명, 소형교회 구성원(장로, 권사, 집사) 5명 등 총 2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담 방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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