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과 종교 수업이 ‘부담’ 아닌 ‘기쁨’ 되도록 노력하는 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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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과 종교 수업이 ‘부담’ 아닌 ‘기쁨’ 되도록 노력하는 학교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2.06.13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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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한국교회, 미래를 품다 ⑱ 미션스쿨의 두 기둥 ‘채플’과 ‘종교 수업’

전통적인 예배 형식은 줄이고 학생들 필요 채워
“비신자가 섞여 있다면 그들에게 포인트 맞춰야”
종교 교과 시험 없지만 편하게 만나기에 더 좋아

2004년 이른바 ‘강의석 군 사건’은 미션스쿨의 채플과 기독교 수업에 직격타를 날렸다. 학생의 학교 선택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미션스쿨이라고 해서 채플과 기독교 수업을 강제할 수 없게 된 것. 그때부터 기독 사학들은 설립 목적을 수호하면서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일부 학교들은 이런 1차 목적을 뛰어넘어 더욱 채플다운 채플, 기독교적인 종교수업으로 상황을 역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사벨중학교 학생들과 채플 강사로 참여한 박재민 스노우보드 해설위원.
이사벨중학교 학생들과 채플 강사로 참여한 박재민 스노우보드 해설위원.

배려가 곧 예배로의 초대

부산에 있는 이사벨중학교는 전체 입학생 가운데 기독교인이 10%에 불과하다. 그런데 졸업할 때까지 세례를 받는 학생은 무려 70%에 달한다. 비결이 뭘까. 이 학교 교목 전성곤 목사는 믿지 않는 아이들에게 채플이 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필요를 채워줄 방법을 찾다 보니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 강사를 선정하는 기준은 크리스천을 우선 대상으로 하되,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도덕적·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을 섭외한다. 일회성 강연으로 끝나지 않도록 종교수업 시간에 미리 강사의 책을 읽거나 강의 영상을 시청한다. 강연 후에는 교목들이 성경적 가치관으로 강연 내용을 접목하고 있다. ‘채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인문학 강좌’의 성격이 강하다.

“뭘 할까 고민을 하는데 아이들이 진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좋은 책을 쓴 작가나,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에 출연했던 분들을 초청해서 아이들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학생들 반응이 좋았던 것은 물론이고, 신기하게 세례 희망자가 늘어났습니다.”

충남 아산의 한올고등학교는 개학 직후 곧바로 채플을 시작하지 않는다. 개학 후 3주 정도가 지나면 그때 첫 번째 채플을 드린다. 이 학교 교목 이성재 목사는 이 간격에 나름의 전략이 있다고 했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채플보다는 수업시간이 아무래도 소규모이다 보니 아이들과 신뢰를 쌓기가 좋습니다. 아이들과 수업시간에 먼저 만나서 설교자의 얼굴을 익히도록 하는 거죠. 무엇보다 ‘이 수업 좋은데’라고 느낄 만큼 즐거운 수업을 준비합니다. 그러면 확실히 아이들 반응이 좋아집니다.”

이 목사는 “우리 학교의 채플과 종교수업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첫 번째 채플 시간에 교사들의 영상 편지를 상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성껏 만든 영상에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 담긴다. 그리고 그사이에 하나님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다.

“선생님들이 나와서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싫어할 아이들이 있을까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채플이 진행되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요.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이 20%에 불과한데도 만족도 조사를 해보면 94%가 ‘좋다’고 답하더군요. 예배는 우리 학교의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사벨중학교의 세례식.
이사벨중학교의 세례식.

주기도문 생략해도 될까

이 질문은 기독교학교에서 드리는 채플의 성격을 규명하는 핵심과도 같다. 동시에 비기독교인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를 묻는 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예배학회 회장을 지낸 서울장신대 김세광 교수는 “비기독교인도 하나님의 피조물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예배의 자격이 있다”면서 “중고등학교 채플에는 비신자들이 의무적으로 참석하고 있어서 설교자는 청중들을 의식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관심을 이끌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신자들만 아는 신앙적 용어를 가능한 일반적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설교의 용어만이라도 교리적이고 종교적 용어를 일반적인 말로 바꾼다면 소통의 효과가 증대하고, 회중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채플 설교에서는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용어를 경계하고, 포용적인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가령 남성 중심의 용어나 민족주의적 용어, 살상을 전제로 하는 전쟁의 용어들은 비록 그 용어들이 성경으로부터 온 것이라도 오히려 그럴수록 현대적 의미와 표현으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시도는 신자들에게는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설교가 세속화되는 것 같아 어색하고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제도적 의무의 예배에 참석한 비기독교인들에게는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격려하는 소중한 봉사가 될 것”이라며 “이런 배려와 노력으로 의미 없이 형식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이 구도자가 되고, 결국 신앙을 얻게 된다면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사벨중학교 종교수업  모습.
이사벨중학교 종교수업 모습.

권위보다는 겸손한 자세로

‘종교 교과’는 미션스쿨에서 ‘채플’ 외에 기독교 교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정규 과목이다. 현행 종교 교과서가 시중에 나와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이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시험이나 평가가 없어서 수업의 긴장감이 떨어지기에 십상인데,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어서 제대로 된 기독교 교육을 하는 데는 쉽지 않다는 것. 이마저도 고등학교에서만 종교 교과를 가르칠 수 있고 중학교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 등을 활용해 ‘임시방편’으로 기독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마다 종교수업의 명칭이 제각각인 점은 흥미롭다. 안산동산고 학생들은 1~2학년 때 ‘종교와 생활’, 3학년 때 ‘창조와 진화론’을 배운다. 저학년은 ‘관계’ ‘가족’ ‘심리’ 등 기독교와 직접 연관되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을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배운다. 3학년에 좀 더 직접적인 형태의 기독교 수업을 배우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한올고의 경우 1학년은 목회자가 교사로 참여하는 ‘나를 찾아서(진로)’를 배우고 2~3학년 교실에서는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이번에 만난 교목들은 하나같이 시험이 없는 것이 그다지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이사벨중학교의 전성곤 목사는 “시험 부담이 없으니 아이들이 더 편하게 수업에 임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신 수업 준비를 잘 하면 그만큼 아이들이 진솔하게 참여하더라. 긴장감은 떨어질 수 있지만, 시험이나 평가는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교목들을 양성하는 백석대 기독교교육학과의 주정관 교수는 “넌 크리스천이 섞여 있는 상황에서 기독교 교육은 안 믿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나치게 믿음을 강조하거나 전도하려는 의도로 접근한다면 학생들이 부담을 갖고 마음의 문을 닫고 교육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또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더라도 보편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기독교의 역사를 설명할 때도 공헌과 함께 실수한 부분도 함께 이야기하면서 반성의 태도를 보인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랑의 마음을 갖고 인내와 겸손으로 가르치다 보면 역설적으로 의외의 열매가 나타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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