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구는 학교입니다”
상태바
“나의 교구는 학교입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2.06.09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중기획 - 한국교회, 미래를 품다 ⑰학원 선교의 플레잉 코치, 교목

교사와 목사의 이중 정체성 지녀…교회와의 가교 역할
어려워지는 학원 복음화 상황 속 창의적 접근 요구돼

기독사학에는 일반 학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성원이 있다. 바로 ‘교목’이다. ‘교육목사’라고도 하는데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 제33조에서는 “총회나 노회와 신학교 및 기독교 교육 기관에서 청빙을 받아 시무하게 되는 목사”라고 설명한다.

영어로는 군종 목사나 병원의 원목 등과 같이 ‘Chaplain’으로 표기한다. 이미 기독교 학교 교육의 역사가 긴 유럽이나 북미 문화권에서는 익숙한 개념이지만 한국에서는 근대 교육이 도입된 이후에 등장했다. 초창기 한국의 근대적 의미의 학교가 대부분 기독교 계통이던 것도 ‘교목’의 존재를 각인시킨 이유 가운데 하나다. 교목을 양성하기 위해 신학교에서 ‘기독교 교육학과’를 개설할 만큼 한국교회에서는 일찌감치 교목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해 왔다.

1964년 발표된 ‘한국기독교학교 교목의 당면과제’라는 논문에서 저자 김득렬 목사는 교목의 역할에 대해 6가지로 정리하고 있는데 △학원의 목사로서 기독교 신앙 위에서 학원 전체 생활이 이룩되도록 노력함 △채플 인도와 설교 및 각종 종교적인 의식을 주관함 △성경과 그 밖의 적합한 과목들을 담당 교수함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의 카운슬러 △학생들의 종교적인 자치활동을 지도함 △대외적으로 그 학교와 지방 교회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힘씀 등이다. 발표된 지 60년 가까이 지난 논문이지만 지금 교목들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종교 사학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본격화하기 시작했고, 공교육 체계 내에서 기독교교육을 실천하기가 점차 어려워지면서 교목들은 이 여섯 가지를 수행하는 것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진심은 통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위치한 덕신고등학교에는 ‘붕어빵 선생님’으로 잘 알려진 교목이 있다. 바로 김세환 목사다. 17년 전 김 목사는 이전 근무지였던 익산 성일고등학교에서부터 ‘붕어빵 사역’을 시작했다. 붕어빵 이전에도 초코파이와 요구르트 같은 간식거리를 불시에 나눠주기도 했던 그다. 하지만 직접 정성을 담아 만든 붕어빵과 비교하면 효과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당시만 해도 야간자율학습이 강제였어요. 지친 학생들을 격려하고 응원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찾은 것이 붕어빵이었습니다. 멀리 인천에서 포장마차 장비를 중고로 팔길래 통째로 구매를 했고, 연습을 거쳐 2005년 봄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목사님이 붕어빵을 구워줄 거야’ 했더니, 놀랍게도 ‘얼마에요’ 하고 묻더군요. 하나님 사랑은 대가가 없으니까 ‘붕어빵 한 개, 사랑 한 움큼’이라고 적어서 나눠주기 시작했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붕어빵 사역에 ‘오병이어’라는 이름도 붙였다. 목사의 진심에 반응하여 함께 하고자 하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그 아이들과 함께 ‘오병이어’ 동아리를 결성하게 됐고, 붕어빵과 함께 어묵도 나눠주기 시작했다.

덕신고등학교 학생들이 김세환 목사가 만들어준 붕어빵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덕신고등학교 학생들이 김세환 목사가 만들어준 붕어빵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초창기 함께 붕어빵 굽던 아이 중에 목사가 된 친구도 있습니다. 뿌듯하죠. 붕어빵을 나누는 것이 선교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결국 ‘관계’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전부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붕어빵을 구워주는 그 모습을 아이들은 보거든요. 좋은 인식도 쌓이고요. 보이지 않지만 큰 힘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붕어빵을 통해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역지를 옮긴 이후에도 사역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죠.”

김 목사는 진정성과 함께 ‘창의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2~3년간 덕신고등학교에서 실시한 ‘달란트 시장’을 소개했다.

“교목실에서 ‘달란트’를 만들어서 교사들께 나눠드립니다. 단위도 1달란트, 2달란트 등 다르게 만들죠. 그러면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이나 생활 중에 칭찬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달란트를 수여합니다. 교목실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달란트 시장을 엽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용품부터 군것질거리까지 가격을 책정해서 달란트와 교환해주죠.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사람들이야 달란트 시장이 익숙한 ‘고전’이지만, 신앙 경험이 없는 아이들한텐 아주 신선한 이벤트입니다. 교목실로선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으니 긍정적이죠. 최근엔 한 아이가 요한복음을 필사해서 가져왔어요. 안 믿는 아이였는데 말이죠. 꼭 신앙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겐 바른 생활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선생님들 역시 돈 안 들이고 아이들을 격려할 수 있으니 일 석 삼조입니다.”

달란트 시장이나 붕어빵 사역에는 학교 예산뿐 아니라 지역교회 담임목회자들로 구성된 ‘덕신학원선교회’의 전폭적인 후원이 뒷받침하고 있다. 김 목사는 “교목의 중요한 정체성 가운데 하나가 지역교회와의 가교 역할”이라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교육 현장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대두되는 요즘 교회와 학교 모두를 아는 교목의 정체성이 점차 중요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눈높이를 맞추다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인성초등학교는 지역에서 잘 알려진 기독교 학교다.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황예찬 목사는 올해 5년 차 교목이다. 전임자들이 보통 1~2년 정도 일하고 사역지를 옮긴 것과 달리 황 목사의 근속연수는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다. 그의 사역이 좋은 평가를 받는 까닭도 있지만, 황 목사 자신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퍽 즐겁다고 했다.

“하루하루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긴다고 할 만큼 추억거리가 많습니다. 지난 스승의날에도 한 아이가 편지를 주고 갔는데, 자기는 교회에 안 다니는데 목사님이 너무 좋고, 덕분에 예수님을 믿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아빠에게도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는 메시지에 너무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황예찬 목사가 지난 부활절 예배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다.
황예찬 목사가 지난 부활절 예배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무려 6살 터울의 아이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황 목사의 비결은 ‘눈높이 교육’이다. 같은 내용을 전하더라도 학년별 버전을 달리한다.

“1학년 아이들의 경우 수업 중에 돌아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하루하루가 전쟁과도 같아요. 그럴수록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려고 합니다. 지난 부활절에는 성경 인물로 분장을 한 채 설교했더니 아이들 반응이 좋았어요. 평상시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수업에 접목하곤 하죠. 얼마 전엔 ‘방 탈출’과 성경 퀴즈를 접목하기도 했죠. 방 탈출은 다른 분들께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기획만 잘 하면 비대면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거든요.”

황 목사는 최근 중고등학생들의 복음화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은 마음이 많이 열려 있습니다. 더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죠. 이때 더 많이 신경 써서 중학교로 보낸다면 나중을 더 대비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립 정신을 지키기에도 중고등학교와 비교하면 초등학교의 상황이 좋습니다. 학부모들도 학교의 방침에 100% 동의하고 아이들을 보내시기 때문이죠. 특히 코로나 시기에 아이들이 방치되는 일들이 많았지만, 미션스쿨의 경우 아이들을 잘 다독이면서 교육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미션’보다 ‘교육’에 관심을 두고 아이들을 보낸 부모님들이 계시기에 그들의 반감을 사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이 교목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가 먼저 믿고 부모님들이 따라서 교회를 다니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사들도 목회 대상

충남 아산의 한올고등학교는 교목실 대신 학교 교회를 별도로 두고 있다. 이 학교 교목 이성재 목사는 2003년부터 ‘행복한 학교 만들기’를 기치로 사역하며 채플 만족도 94%라는 놀라운 열매를 거둬왔다. 특히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을 위해 매년 진행하는 행복 프로젝트 ‘위 캔 플라이’는 1박 2일간 진행되는 캠프임에도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학교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제가 처음 부임했을 당시만 해도 ‘목사님 우리 집 안 와보셨죠’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너희는 소중하다’고 알려주기 위해 다양한 심리 프로그램뿐 아니라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참여시켰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위 캔 플라이’였죠. 처음엔 생활지도 ‘하’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었는데, 선생님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전교생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확대됐습니다.”

‘위 캔 플라이’뿐 아니라 이 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이 ‘기독교적인 가치관’ 아래 촘촘하게 짜여 서로 유기적인 역할을 한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여러 프로그램이 학생에게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목사는 이를 두고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목회를 하는 셈”이라고 했다. 특히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폭력 대화 연습 모임’은 주말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임에도 매번 높은 호응 속에 신청이 마감된다. 이밖에 매주 수요일 교직원 예배와 금요일 교무실별 속회는 교사들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영성을 함양하는 시간이다.

한올고등학교 교사들과 이성재 목사가 함께하는 비폭력대화연습 모임.
한올고등학교 교사들과 이성재 목사가 함께하는 비폭력대화연습 모임.

“기독교 학교라고 하여 모든 교사가 늘 영적으로 충만하거나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엔 선생님들의 영적 상태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교목은 학생들뿐 아니라 선생님들을 위해서도 항상 목회적 관심을 열어두고 있어야 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