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으로 몰린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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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으로 몰린 집사
  • 최운식 장로
  • 승인 2022.03.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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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식 장로/서울장위감리교회 원로장로·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오래 전의 일이다. 백령중·종합고등학교 B교감이 찾아와서, 백령도에 전해 오는 ‘심청 전설’과 「심청전」의 관계를 밝혀 달라고 하였다. 그는 「심청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내가 꼭 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와 이 일을 하기로 하고, 옹진군에 조사비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듬해 여름방학에 백령도에서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주일을 맞았다. B교감은 백령도에서 가장 큰 J교회의 집사였다. 그런데 그는 나를 군인교회로 인도하였다. J교회 목사님은 그가 「심청전」의 배경을 고증한 뒤에 심청각을 건립하려는 것을 알고, 설교 중에 ‘우상의 전당인 심청각 건립을 추진하는 사람은 사탄’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나를 데리고 갈 수 없어 군인교회로 간다고 하였다.

나는 몇 차례에 걸쳐 백령도와 인근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전설, 민속을 철저히 조사하였다. 그 결과 ‘심청 전설’에 나오는 ‘인당수’, ‘연봉’, ‘연화리’가 실존 지명으로, 이야기 속 조류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백령도는 중국을 왕래하는 상선들의 중간 기착지였고, 항해의 안전을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습속이 남아 있던 지역임을 확인하였다. 이를 근거로 ‘심청 전설’이 전해 오는 백령도는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하였다.

옹진군에서는 내가 주도하여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심청각 건립을 구체화하였다. 그러자 J교회 목사는 예배 시간에 “심청각은 우상의 집이므로, 짓지 못하도록 막겠다. 만일 우리 교회 뒷산에 심청각을 짓는다면 할복자살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백령도 기독교연합회 이름으로 청와대, 문화공보부, 인천시에 심청각 건립 반대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심청각 건립은 사라져가는 샤머니즘 문화의 정착이고, 허구적인 이야기를 실제로 있었던 일인 것처럼 꾸미는 것이므로 반대한다고 하였다. 진정서를 받은 세 기관에서는 적절히 처리하고 보고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이 공문을 받은 옹진군청 문화계장은 답변서를 어떻게 써야 하느냐며 하소연하였다.

나는 「심청각은 우상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월간지에 실었다. 「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꾸며낸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곳에 그 작품의 내용과 관련되는 상징물이나 자료관을 세우고, 그 지역을 홍보하는 것은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에도 흔히 있는 일이다. 남원을 유명 관광지로 이름나게 한 것은 「춘향전」이다. 「심청전」의 배경이 된 백령도에 심청각을 세워 심청의 효행을 기리고, 백령도를 효원의 섬으로 홍보하는 것은 관광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심청각을 우상숭배의 표상이라고 하는 것은 문학이나 문화를 종교와 혼동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옹진군청 문화계장은 이 글을 참고하여 답변서를 써서 보고하였다.

B교감은 이 글을 백령도에서 발간하는 「백령도지」에 옮겨 실어 많은 백령도 주민이 읽게 하였다. 지역 유지인 B교감의 제자들은 존경하는 은사가 추진하는 일이 옳다고 여기면서도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들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반대 진정서에 서명을 한 상황이었다. 이들이 내가 쓴 글을 읽고, 목사를 찾아가 진정서에서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많은 수의 주민이 빠져나가자 탄원서는 힘을 잃고 말았다.

지금 인당수와 연봉바위, 연화리가 보이는 J교회 뒷산 정상에는 심청각이 서 있다. 그 안에는 「심청전」 관련 자료와 작품의 주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판소리 「심청가」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사탄으로 몰렸던 B집사는 그때 바로 누명을 벗었다. 그리고 백령도 주민의 소원을 풀어준 고마운 분으로 칭송을 받다가 얼마 전에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 B집사는 하늘나라에서 안식을 취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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