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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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소원
  • 최운식 장로
  • 승인 2022.02.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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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식 장로/장위교회 원로장로·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어머니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 곁을 떠나신 지 19주년이 되었다. 지난달 나는 가족과 함께 추도예배를 드리고, 잠시 어머니 생전의 일을 회고하였다. 어머니 생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 중에서 어머니를 서운하게 해 드린 일이 선하게 떠오른다. 

내가 아홉 살이던 1950년에는 6·25 전쟁이 일어났고, 열두 살 위의 형이 의용군으로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몸이 약하셨던 아버지는 큰아들을 잃은 충격이 겹쳐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흔세 살에 큰아들을 잃고 홀로 되셔서 6남매를 데리고 넉넉지 못한 살림을 꾸려가야 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단한 나날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 해에 어머니는 지인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약 2km 떨어진 교회의 예배와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다니셨다. 예배당 건축을 위해 흙벽돌 찍는 일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교회 일을 앞장서서 하셨다. 뜨거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어머니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셨다. 친척들은 어머니가 예수에 미쳤다며 비웃고 빈정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날에는 가정예배를 드렸다. 어머니는 농사일과 길쌈을 열심히 하고, 삯바느질도 하면서 살림을 꾸리셨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휴학하고 취직하였다가 복학하여 친척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무렵 어머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서지방 감리사의 파송을 받아 농촌의 개척교회 담임 전도사가 되어 막내딸만 데리고 부임하셨다. 어머니는 교회 일을 충실히 하는 한편, 성경학교에 다니시며 신학공부도 열심히 하셨다. 그 교회가 부흥되자 또 다른 개척교회로 옮겨가서 교회 부흥에 힘쓰셨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어머니는 나에게 신학대학에 가서 공부한 뒤에 목사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목회자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익히 보아왔기에 싫다고 하였다. 그리고 평신도로 교회를 잘 받들면 되지 않느냐고 하였다. 이 말은 어머니의 권유를 뿌리치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어머니는 이 말을 잊지 않으셨다,

서울교육대학에 진학한 나는 졸업과 동시에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야간대학에 편입학하여 학부 과정을 마친 뒤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밟던 중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자, 졸업생과 재학생이 주관하여 박사학위 영득 축하회를 열어주었다. 축하회장에서 어머니는 많은 친척과 친지로부터 축하를 받으시며 기뻐하셨다. 그 때 한 분이 어머니께 소감을 묻자, ‘아들이 문학박사 아닌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신학박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마음이 드러난 말이었다.

교수가 된 나는 강의와 연구, 학생 지도, 외부 강의와 글쓰기, 방송 출연 등으로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나는 ‘시간은 돈’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힘주어 말하곤 하였다. 그것은 생활 체험에서 나온 절실한 말이었다. 교회에서는 집사, 교회학교 교사, 권사의 직분을 맡았으나, 열심히 일하지는 못하였다. 

어느 날, 담임목사님께서 나를 장로로 추천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장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강하게 사양하였다. 그러자 목사님은 어머니가 “아들이 장로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다고 하시면서,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소원을 이뤄드리라고 설득하셨다. 그 이듬해에 나는 장로가 되었다. 그때 어머니는 여든아홉 살, 나는 쉰다섯 살이었다. 장로취임식에 참석하신 어머니는 정말 기뻐하셨다. 그 날에 만족해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께서 평생의 소원으로 기도하신 것을 온전히 이루어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스럽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이루어 드린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죄송스러운 마음을 눌러두려고 한다. 어머니의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 “어머니,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곧 뒤 따라 가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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