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은 한계와 약점을 알기에 더 조심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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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은 한계와 약점을 알기에 더 조심할 줄 안다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1.06.22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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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전도서이야기 -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받게 하느니라”(전 10:4)

된장에 곰팡이가 슬었다고 항아리를 깨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곰팡이 닿은 곳만 걷어내면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향유 병에 파리가 들어가 죽으면 악취가 퍼져 값비싼 향유를 병째 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지혜와 존귀’로 채워진 인생의 향유병에 파리 한 마리처럼 작은 ‘우매’가 들어가 전부를 망쳐버리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전 10:1) 그래서 우리 인생의 결실을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이루는 이상으로 작은 우매함을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갈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지혜자는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알기에,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심할 줄 압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만용을 부립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잠 22:3, 개역한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약속을 하고 만용을 부리다보면 주권자의 노여움을 살 일이 생깁니다.

사실 지혜로운 사람도 완벽할 수 없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기에 화를 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받게 하느니라”(4절). 사람이 잘못을 전혀 저지르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니, 잘못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주위에서 보면 잘못을 저지르고도 후회와 반성 없이 변명과 비난에 바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남 탓만 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당장은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듯해도, 자신의 미숙함이나 판단착오가 그 상황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부터 생각해보는 것이 겸손이고 지혜입니다.

그러나 빠르다고 우승하는 것이 아니며 힘세다고 꼭 이기는 것은 아니라면서 인생의 ‘시기와 기회’를 강조했던(9:11) 전도자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지는 않을 터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리 성실하고 겸손해도 화가 닥치기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 재난 중 하나가 바로 ‘주권자의 허물’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전 10:5). 자연재해나 사회의 부조리와 마찬가지로, 통치자의 흠결은 그 통치 아래 있는 이들에게 재앙을 뜻합니다(전도서 10:5의 ‘재난’과 잠언 22:3의 ‘재앙’은 원어로는 같은 단어입니다). 주권자의 눈이 흐려지면 “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들을 얻고 부자들이 낮은 지위에 앉는” 나라,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 나라가 됩니다(6~7절).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가 어리석거나 타락하면 가장 먼저 인사에 문제가 생깁니다. 유능하고 강직한 인재가 버림받고, 눈치만 빠르고 사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지도자 곁을 차지하면 그 집단의 미래는 어둡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이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불편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심지어 신체와 생명의 위해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권위주의 사회에서 소신껏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때로 그런 소신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아직도 과거지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하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결코 추상적 경구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 행동에 따르는 위험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신중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10절) 겸손과 지혜를 품은 사람의 길에 형통함이 있습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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