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동거시대, 물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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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동거시대, 물에서 배운다
  • 김종생 목사
  • 승인 2020.10.23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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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경구처럼 코로나가 쉬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동거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위드 코로나로 같이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전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예측하면서 제시되는 미래의 모습들이 다양하지만 그 안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비대면’(uncontact)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식사와 다음세대 교육 그리고 전통적인 소모임들과 대면심방과 선교활동의 제한 그리고 교회 재정과 교인 수 등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영상 예배와 화상을 통한 회의, 교육, 모임들이 강화되고 비대면으로 인한 디지털 인프라의 구축과 교회 건물의 공유공간화 등이 주목받는 영역으로 새롭게 부상할 것으로 여겨진다.

한 목회자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 “내년에 코로나 상황에서 목회를 한다면 주제는? 표어는? 방향은?” 이라는 질문 속에 고견을 구하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모두가 맞이하는 코로나 속 새해 준비로 예측하기 어려워 불안도 하고 두렵기 조차 한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라는 불랙홀로 빠져들기는 하는데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막연하고 답답하기만 한 실정이다. 코로나19라는 사건 안에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시대를 읽는 통찰력을 키워가고 안목을 발휘해 사역을 잘 선별하고, 가장 집약적이고 효과적인 사역을 준비해 새로운 길을 찾는 변곡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 주여, 내게 주의 길을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 안에서 걸으리니 내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사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바른성경 시 86:11)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 길이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겸손하게 물어야 한다. 애굽과 광야에서 살던 독자적 패턴과는 다른 동거하는 가나안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바벨론 포로기에 훼파되어진 성전과 드릴 수 없는 제사와 예배를 대체할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고 성전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회당으로서의 공간을 발견해 내야 한다.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안식일이라는 시간 속에 계신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분명히 다른 상황을 접하고 있다. 모양만 바꾸는 약간의 수선과 땜질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라는 낡은 부대에 우리 주님의 하나님 나라를 담을 수 없는 새포도주 말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선언하신 것 같다. 이전의 노방전도나 성경공부, 모두가 부러워하는 근사하고 멋진 예배당, 백화점 같은 종합적이고도 편리한 수준급의 다양한 프로그램, 단독교회로 완결구조를 갖춘 교회의 운영체계, 어떤 문제라도 다 열수 있는 교회성장이란 만능키는 이제 그 유효기간을 넘긴 것 같이 보인다.

노자는 물을 상선(上善)으로 표현했다. 가장 선한 것, 가장 좋은 것, 가장 완전한 것이 상선이다. 물은 일정한 모양이 없기 때문에 어떤 그릇에나 맞추어 담긴다.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것과는 꼭 반대다. 노자는 물의 속성 가운데서 특히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는 점에 주목했다. 춥고 음습한 곳, 낮고 어두운 곳, 물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런 데에 기꺼이 머문다. 자신을 낮추고 작게 하되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곳에 기쁘게 자리한다. 그렇다고 물을 물로 보았다간 큰 코 다친다. 물이 나약하게, 자신을 비우고 상대에게 다 맞춰준다고 물을 함부로 대하면 물은 용서하지 아니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신은 항상 용서한다. 인간은 가끔 용서한다.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유연한 물을 통해 겸손과 도도한 기상, 물의 친화력과 강한 능력을 본받되 주님 앞에 우리 모두는 겸손하게 새 길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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