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과 「무한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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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과 「무한공생」
  • 승인 2004.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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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말 바로쓰기<104>-김석한목사<천안대신대원 실천신학>

오늘날 우리사회와 교회의 지도자들까지도 강단에서, 시대정신과 특성을 이야기할 때 “무한경쟁”(無限競爭)의 시대로 규정짓고 이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표현은 기독교윤리적 관점에서 설교의 언어로는 적절하지 않다. 경쟁이라는 말은 “같은 목적에 대하여 서로 겨루어 앞서거나 이기려고 다투는 것”이라는 말인데 성경에도 이와 같은 의미를 담은 기록이 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그의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는 기록(창30:8)과 요시야 왕의 아들 <살룸>이 다시 왕이 되고자 “백향목으로 집짓기를 경쟁하므로”(렘22:15)라는 것인데 이는 그 경쟁이 신앙이나 윤리적인 바탕을 깔고 있지 않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물론 “무한경쟁”이 오늘이라는 국제사회의 국가적 전략에 있어 국력의 범주인 과학기술과 지식정보, 인력과 자원, 문화와 국방 등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이겨야 한다는 생존 전략적 대안(代案)논리에서 이해되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제한 없는 경쟁을 상대가 쓰러져 내가 이길 때까지 무제한적 경쟁이라면 그것이 기독교적 윤리이겠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점의 발생은 무한경쟁의 논리에 바탕을 둔 잘못 된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빚어진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교회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성경의 핵심적인 목적인 <가르침>(롬25:4)을 통하여 “한 사람이 모든 사물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신념이나 견해의 포괄적인 틀”이 세계관이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전제(前提)된 세계나 만물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 또는 근본적인 태도나 견해”가 가치관이라면 이러한 관점이 성경에 의해서 일깨워지고 형성되어야 하고 그 성경을 통하여 사물의 가치를 보고 가치를 부여하는 관점이 기독교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러한 영성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경쟁의 논리나 사생(死生)적 결단의 윤리를 말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정신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선한 실패가 악한 성공보다 승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처세가 정직하게 살아가는 유약함을 앞서지 못함은 그 판단과 평가가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와 내가 모두 같이 사는 공생(共生)과 공영(共榮)의 질서와 윤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세계관이 되고 가치관이 되었으면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연합된 공동체의 질서를 일깨우되 강단 메시지는 남을 압도하는 질서를 말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가 함께 상생(相生)하는 이상(理想)을 말하고 “무한경쟁”이 아닌 “공생공영”(共生共榮)의 기독교적인 삶의 질서와 양식(樣式)을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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