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유당 원내 진입 실패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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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유당 원내 진입 실패를 바라보며
  • 임석순 목사
  • 승인 2016.04.15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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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순 목사

정치권에 뿔난 민심을 보여주었다는 4.13총선이 끝이 났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동성애합법화와 이슬람테러를 막기 위하여 기독교 정당을 구성해 이번 총선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3%의 지지를 얻어야 원내 진입에 성공하는데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건 당이 하나가 아니라 둘로 나눠졌기 때문이라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혹자는 기독교인이 하나가 되지 못하여 한 석도 내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고자 한다면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실 것입니다.

총선을 치루면서 입후보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면 세상을 바꾸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세상은,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오실 때 백성들이 입고 있던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멋진 말을 타신 것이 아니라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으니 모든 것은 초라하지 그지없었습니다. 만왕의 왕께서 도대체 왜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을까요? 주님의 통치 방법은 세상의 통치 방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는 백마를 타고 입성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세상 나라의 왕은 힘으로 통치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힘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신 것은 겸손함,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나귀새끼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라고 표현하고 있는데(눅19:30) 이는 민수기의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민1:2)와 연결됩니다. 즉 제물이 되기 위해 끌려오는 흠 없는 암송아지는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타고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 입성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만왕의 왕께서 “내가 죽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 것, 내가 희생하는 것이 아버지의 통치방법입니다.

모두가 백마를 타고 뭔가를 해보겠다고 하나님께 백마만을 구하는 세상에서 묵묵히 눈물뿌리며 무릎 꿇고 주님을 초청하는 사람, 나귀새끼를 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만왕의 왕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 길은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 땅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 보냄 받은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이 민족에, 교회들에, 그리고 다음세대에 구원이 베풀어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나귀새끼를 타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건 당에서 한사람도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다고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단합하지 못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기독교인 스스로 비하하지 말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백마가 아닌 나귀 새끼를 타고 이 세상을 변화시켜 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나귀 새끼를 선택할 때 하나님이 동성애 문제도 이슬람의 문제도 그 외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나귀새끼를 선택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세배대의 아들의 어미가 자신의 아들들이 주의 나라에서 좌우편에 앉게 되기를 구할 때 주님께서는 크고자 하는 자, 으뜸이 되고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며 주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주님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0:20-28) 그렇습니다. 나귀새끼를 선택하는 것은 섬기는 것이며 종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정당에 대한 지지의 목소리도 우려의 목소리도 공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어떤 힘을 소유하고 여론을 결집해서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는 것을 열망하기에 하나님의 통치 방법은 언제나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실현하는 방법도 예수님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고 세워나가는 십자가의 길을 가셨기에 우리도 나귀새끼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귀새끼를 선택할 때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그 영광의 광채를 받아 내가 영화로워짐으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드러나게 됩니다. 백마를 타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큰 대의 명분과 선한 의도로 시작한다 해도 백마를 타고 입성하는 길은 결국에 나의 능력, 나의 힘과 권력만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민족에, 교회에, 그리고 다음세대에 나귀새끼를 타는 사람이 많아질 때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이 드러나고 그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임석순 (한국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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