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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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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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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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암의 재앙

파라오는 메뚜기 떼 재앙을 ‘이 죽음’, 즉 ‘이 치명적인 재앙’이라고 불렀다(출 10:17). 그는 그 문제가 해결되자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죽음보다 더 큰 재앙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그는 아홉 번째 재앙과 열 번째 재앙을 통해 메뚜기 떼보다 더 무서운 죽음이 그와 그의 백성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메뚜기 떼처럼 이집트에게 치명적인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출 1:9).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걱정했다(출 1:10).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출 1:11) 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잘못 판단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출 1:12). 파라오와 이집트에게 최상의 해결책은 메뚜기 떼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 것이었다. 파라오는 이집트 전역을 덮은 메뚜기 떼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홍해로 인도하시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지만 이집트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이집트는 그들의 반역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메뚜기 떼가 이집트에 한 마디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이집트에게 복이듯이, 메뚜기 백성 이스라엘 사람이(민 13:33) 이집트에 한 명도 남지 않는 것이 이집트에게 복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셉을 통해 이집트에 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는 일은 즉시 이루어졌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이 자신을 위해 중보기도해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이 이루어졌을 때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 이와는 달리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되어 주실 때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히 4:16).


하나님은 ‘즉시’ 베푸신 죄 용서와 은혜를 곧바로 무시한 파라오에게 ‘즉시’ 반응하신다. 하나님은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출 10:21)고 모세에게 명령하신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게 되었다(출 10:22). 흑암의 재앙은 사전 경고도 없이, 하루라는 회개의 기회도 없이 바로 주어졌다.


3일 동안 이집트 백성은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다(출 10:23). 이집트 전역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암흑 때문에 이집트 전역은 정지 상태에 빠졌다. 이 상태에서 이집트 백성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각기 자기 처소에 누워 있는 것뿐이었다. 그들을 실질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흑암은 이집트 백성이 아직 그들의 일과를 시작하기도 전에 시작되었던 것 같다.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출 10:23). 이집트 땅은 너무 어두워서 이집트 백성은 서로를 볼 수 없었다.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을 때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질 것이다(계 16:10).


이번 경우에 모세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고 손을 사용한다. 이는 지팡이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르비딤에서 모세의 들어 올린 손을 홀과 아론이 뒷받침함으로써 아말렉을 계속 이기게 하신다. 승리는 그 손이 향하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들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는 구속주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놋뱀을 들어올렸다(민 21:8). 그 놋뱀을 본 사람들이 치유를 경험했지만, 그 백성을 치유하시는 분은 놋뱀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나중에 이스라엘 왕 히스기야가 놋뱀을 우상으로 숭배하던 현실을 보고, 그것을 부스고 놋 조각(네후스탄)이라 불렀다(왕하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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