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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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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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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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메뚜기 떼 재앙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하나님의 약속대로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다(출 10:14). 이집트인들은 사막에서 날아오는 메뚜기 떼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전무후무한 규모의 메뚜기 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이집트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와 처벌은 그만큼 큰 것이었다.


이집트는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를 지니기에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땅이다.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보호한다는 이집트의 태양신 라(Ra)가 이집트를 다스린다고 믿을 정도로 하늘은 언제나 맑고 밝았다. 그런데 메뚜기들이 이집트의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다(출 10:15).


고대 사회는 일식이 일어날 때 이를 재앙으로 여겨 통치자에게 큰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라(Ra)의 다스림과 보호를 받는다고 자처했다. 그들은 태양신 라와 대립하는 아포피스가 태양신을 삼킬 때 일식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이는 태양신의 패배를 뜻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신 메뚜기 떼 재앙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한낮에도 어두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는 이어질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집트인들은 네페리(Neper)와 네피트(Nepit)가, 그리고 세트(Seth)가 곡물을 보호한다고 여겼다. 그들은 죽은 듯 보였던 땅에서 봄에 곡물이 다시 올라오는 것을 생명과 죽음, 부활의 순환을 따르는 것으로 여겼으며, 오시리스(Osiris)가 그 순환을 관장한다고 여겼다. 그들은 세라피스(Seraphis)가 메뚜기 떼와 같은 질병과 재앙들을 막아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들은 에르무테트(Ermutet)가 곡물의 추수를 책임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메뚜기 떼 재앙은 곡물을 보호한다는 이런 신들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임을 입증했다.


밀과 쌀보리는 일곱 번째 재앙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출 9:32), 여덟 번째 재앙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그 해에 추수할 곡식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현재뿐 아니라 그들의 미래까지도 타격을 받았다. 메뚜기 떼 재앙은 이집트인들에게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메뚜기는 생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집트인들은 지금 겪고 있는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메뚜기 떼 재앙은 한 번 겪고 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상황의 변화가 없는 한 더 악화될 문제였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렀다(출 10:16). 파라오는 신하들이 항명에 가까운 항의를 했을 때에야 비로소 모세와 아론이 자기 앞으로 오는 것을 허용했었다(출 10:7-8). 그랬던 그가 이제 아무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렀다. 파라오는 자신이 쫓아내었던 모세와 아론에게(출 10:11) 다시 빨리 와 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상황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다(출 10:16). 우박 재앙 때 파라오는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출 9:27)고 하면서 자신의 불순종을 그 사안에만 제한했다. 이제 메뚜기 떼 재앙 앞에서 다급해진 파라오는 “이번은”이라는 제한을 붙이지 않는다. 이제 그는 그동안 그가 행한 일들이 모두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파라오는 “이번”이라는 제한을 자신의 죄에 대해 붙이지 않고 죄 용서에 대해 붙인다. 그는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출 10:17)고 모세와 아론에게 부탁했다. 파라오는 지난번에도 죄 용서를 구했다가 ‘다시’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실이 마음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하나님께서 ‘이번 한 번만 더’ 용서해주시길 부탁하고 있다. 그는 죄 용서를 구할 때 ‘이번 한 번만 더’라는 제한조건을 붙였기에 아홉 번째 재앙과 열 번째 재앙 때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놓은 덫에 스스로 걸린 셈이다. 비록 ‘이번 한 번만 더’라는 제한 조건을 붙였더라도 그는 자신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께 죄 용서를 계속 구해야 했다. 이집트의 왕이라는 자존심이 그를 구원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부모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때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부모는 죄 고백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그 자녀를 더욱 존귀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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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5-06-05 13:37:21
많이 아픈 모양이군.
판타지와 현실을 구별조차 하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