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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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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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4.2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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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 / 예따람공동체

주님께서 십자가를 향하시는 고난주간 수요일(4월 16일), 온 국민을 비탄으로 몰아넣은 ‘비보(悲報)’를 들었다. ‘세월호의 침몰’이다. 302명이 사망•실종되었다. 수학여행이라는 아름다운 추억 쌓기로 승선했던 고등학생들이 대다수다.

“하나 뿐인 내 새끼 살려주세요.” 오열하는 학부모들의 울부짖음에 온 나라의 부모들은 모두 다 울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눈에서 자꾸 눈물이 흘러요. 사고 소식을 전하는 TV화면을 계속 볼 수가 없는데도, 끌 수가 없어요. ‘혹시나’하는 기대감으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어?’하는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온 몸과 영혼이 하얗게 타들어가고 있어요. 하나님, 무슨 뜻입니까? 무슨 죄가 있나요? 그냥 넋이 나가 중얼거릴 뿐이어요."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폭침으로 두 동강 나 침몰했다. 46명의 젊은이가 세상을 떠났다. 배가 물에 잠겨 있던 기간, 부모들은 하루하루를 절망이라는 생지옥을 겪었다. 4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세월호 침몰로 빚어진 고통의 날들은 어느 세월이 지나야 씻어질 수 있을까?

사후 약 처방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했어야, ~했었더라면’의 가정법 말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어느 것도 가족들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 자들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 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지금까지의 반복되었던 대형 사고처럼 사람들의 뇌리에서는 잊히는 사고가 되고 말 것이다. 이 엄연한 현실의 천박한 문화가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이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단체 기합’이라는 것이 있다.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을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적용시켜 벌주기이다. 동료를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체가 벌을 받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세월호 사고를 바라보면, 누군가의 잘못으로 국민이 벌 받는 셈이다.

누구일까? 대통령일까? 정치인일까? 나쁜 사회적 관행을 만든 사람들일까? 배의 사용기간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시킴으로써 낡은 배를 매입하여 운행하게 한 정부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운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위험하지만 항로를 바꾸도록 한 선박회사의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말도 있다. 말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책임도 지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렇다. 옛날에 비가 오지 않아 가물게 되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면, 왕은 기우제를 드렸다. 기우제의 시작은 임금이 하늘에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의례로 시작된다. 하늘에 용서를 빌며 노여움을 풀어달라고 간청하는 제사다. 임금이 비가 오지 않음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백성들 앞에서 선언하는 것이다.

한 원로목사는 “너무나 참담한 마음입니다. 저부터 기도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때, 뉴욕 타임스는 ‘SHAME’ 한 단어로 제1면을 채웠다. 한 방송사 앵커는 실종자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에 10초간 침묵했다. 이 침묵이 모든 시청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필자는 시론의 원고를 채우지 않으려 한다. 아니, 꽉 채울 수가 없었다. 빈 공간은 슬픔과 고통의 눈물이다. 우린 ‘눈물의 부활절’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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