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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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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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2.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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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 (백석신학교 학장)

비판은 내가 남을 판단하는 것이고 자성은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시면 심판이 되고, 내가 남을 판단하면 비판이 되고, 내가 나를 판단하면 자성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안중에도 없고 남을 비판하는 일에 익숙해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하셨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몰라도 추수 때는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 냄 같이 마지막 날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데려갈 자와 남겨둘 자, 형벌을 받을 자와 면류관을 쓸 자, 지옥에 갈 자와 천국에 갈 자에 대한 심판이 있다고 하셨다. 의와 불의며, 신앙과 불신앙이며, 선악 간에 심판이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행하면 의로워지고 진실해지고 선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던지 심판을 없인 여기면 비판만 하게 될 것이다.

비판은 잘잘못을 밝혀내기 위하여 따지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도 국회 청문회가 한창이다. 정부 각료들의 도덕성문제를 따지기위하여 잘잘못을 밝혀내려고 비판전문가들이 되어졌다. 국무총리 후보자도, 헌법소장 후보자도 청문회의 비판에 못 이겨 스스로 퇴전하였다. 새 각료들도 추천되었다. 자녀병역문제, 재산 부풀리기, 직권남용, 위장 전입 등 비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한 나라의 각료로서 큰 직책을 감당하려면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검증 받아야 하고 또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검증 중 ‘그 일을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 라는 능력 검정은 많이 희석되고 있다. 능력위주로 사람을 판단해서도 안 되지만,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으면,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으므로 모든 사람은 사람의 비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비판에 앞서 자성이 먼저 있어야 하겠다.

자성은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경제의 어려움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할 때 과소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는 말을 쓴다.

이와 같이 자성하는 사람이 많아야 나라는 밝아질 것이다. 자성하는 사람이 있는 가정, 자성하는 사람이 있는 공동체, 자성하는 사람이 있는 교회, 자성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 모두 정결해질 것이다. 비단, 국가 일 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교회는 자성의 목소리가 없고 비판의 목소리만 높다.

모 교회는 고소를 당하여 시달리고 있고, 모 교회는 논문 표절의 도덕성 문제로, 모 교회는 신학과 신앙 노선 때문에 많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비판만하고 자성이 없는 한국 교회는 크게 후회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내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교단을 위해,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깨달은 사람들이 많아질 때 한국 교회는 제2의 종교개혁의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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