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갈등과 합의에 신학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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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갈등과 합의에 신학은 없었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1.1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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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WCC 한국준비위원회는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WCC 10차 총회 성공개최를 위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함께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며 보수교단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다원주의, 공산주의, 혼합주의 등에 반대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선언은 그동안 꾸준히 “우리는 다원주의와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답해왔던 WCC에 대한 오해를 한순간에 씻어내는 의미를 갖는다. 국가적 행사 앞에서 분열되고 싸우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판단에 마음을 모았다.

그런데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그동안 신학적으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던 진보와 보수가 공개적 대화도 없이 순식간에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양 측은 3개월 전부터 만나왔고, 최근 문서를 조율했다고 설명했지만 마치 WCC를 인정하면 이단이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던 보수권의 합의에 고개가 갸웃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 교회의 여러 논쟁 안에는 신학보다 정치가 앞선다는 불편한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한기총은 작년 10월 임원회를 통해 WCC를 ‘사단’이자 ‘적그리스도’로 규정했다. 이들과 교류를 하면 옹호세력으로 규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기총은 지난해 초 조용기 목사에 대해 WCC 신학에 동조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한기총은 신학을 들먹이며 WCC에 참여하는 사람은 곧 ‘이단’이라는 공식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그런데 불과 3개월 만에 내부 논의도 없이 임원회의 결의를 뒤집었다. 홍재철 목사는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답변을 내놓았다. 상황에따라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통합은 또 어떤가. 통합은 한기총의 파행을 주도한 교단이다. 통합 증경총회장인 이광선 목사가 길자연 목사의 인준을 거부했고, 이후 홍재철 목사가 대표회장 선거에 나서자 금권선거로 몰아가며 한기총을 흔들었다. 통합과 힘을 모은 교단들은 한기총이 다락방을 수용하고, WEA에 관계된 이단 의심자와 교류한다며 한기총의 해체를 촉구했다. 그리고 한국교회연합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태동시키며 보수권의 힘을 분산시켰다.

결코 한기총과 함께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교단 차원에서 한기총 탈퇴를 결의함과 동시에 지난 9월 총회에서는 홍재철 목사를 이단옹호자로 규정했다. 이런 껄끄러운 대립을 주도하던 통합에서 이번에도 또 증경총회장이 나서서 한기총과 다시 손을 잡았다. 한마디로 교단 결의에 반하는 원로들의 행동에 실무진들은 ‘멘붕’에 빠졌다.

일련의 사건에서 드러나는 것은 한국 교회의 분열과 갈등에 정작 신학은 없다는 것이다. 교단 결의도, 단체의 결의도 모두 신학의 이름을 내건 ‘정치싸움’에 불과했다. 정치는 순간순간 뒤바뀐다. 홍 목사의 답은 이런 뜻으로 해석된다.

한 신학자는 “WCC 신학논쟁은 1960년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며 한국 교회 신학적 미성숙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공동선언 합의를 통해 그동안 거세게 몰아친 WCC 반대 역시 신학적 반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됐다.

이렇게 합의될 수 있다면 진작 싸우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온 세상에 치부가 다 드러나고, 깊은 상처를 입혀놓고서는 다시 ‘야합’을 한다.

정치 싸움에 ‘신학’의 이름을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 교회 안에 정작 신학은 있는 것인지, 이번 공동선언의 지속성이 의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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