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애찬 통한 예수공동체 회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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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애찬 통한 예수공동체 회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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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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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규 박사 (구세군사관학교)

구세군사관학교가 최근 신학연구소 설립을 통해 자체 신학과 사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체계화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경 대학에서 시작해 구세군사관학교로 개칭한지 100년 만에 이는 변화의 물결이다. 한국구세군은 신학연구소 개소와 함께 이날 구세군신학을 실천신학의 한 분야이자 신앙공동체를 위한 신학으로 만들겠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구세군신학연구소의 제1회 논문발표회 자료를 실었다. <편집자 주>

오늘날 우리 교회는 예배의 감격을 잃어가고 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이 생명과 같이 여겼던 예배를 세상 가치와 대등한 위치에 놓고 살아가는 교인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초대 교회 예배의 감격과 부활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예수 부활의 감격이 살아나고, 십자가 희생을 통한 구속함의 은혜로 가슴 뭉클해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늘 경험하며 살아가는 예수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나눠주신 예수 생명을 품은 교회 공동체가 세상으로 나갈 때, 세상은 그리스도의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예수의 생명을 보게 된다. 작은 예수가 세상에 많아질 때 세상은 예수 사랑을 맛보아 알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성찬이다. 성찬은 예수 십자가 구속의 은혜만을 경험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성찬은 그 이상의 충만한 은혜가 존재한다. 하나님이 차려 주시고 먹여 주시는 손길을 식탁에서 경험해야 한다. 식탁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채워지는 곳이다. 식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서 사역하면서 베풀었던 교제의 장소다.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며 동시에 인간과 인간이 화해하는 장소다.

예수 십자가의 은혜로 식탁에 초대된 사람은 하나님과 화해를 경험하고 사람과의 막힌 담을 무너뜨린다.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경험하는 성령 충만함은 성찬 식탁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에서 행하고 있는 성찬이 상징적 식사의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식사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유월절 식사, 헬라의 심포지엄, 예수님의 일상의 식탁, 초대 교회의 식탁 친교 등에서는 성찬의 식사성을 살펴볼 수 있다. 감사와 교제, 성령의 임재, 천국 식탁의 미리 맛봄 등은 성찬의 식상성이라 말할 수 있다.

교회 역사를 통해 온전한 식탁이 상징적 식탁으로 변화되며 현재의 상징적 식사로서 성찬을 받아들이게 됐다. 즉 현재의 상징적 식사로서 성찬에도 온전한 식사로서의 성찬이 갖고 있는 풍성한 의미들이 여전히 소유해야 할 의미로써 필요하다는 것.

공동식사도 성찬이라는 주장은 리마 문서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리마 문서는 현재 개신교 성찬을 가장 바람직한 성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시에 리마 문서는 공동식사로서의 성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

포도주와 빵의 사용이 여의치 않은 곳에서 허용된 음식과 음료의 사용으로 우리 주식인 밥과 국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고 성찬이 유월절 식사, 예수의 일상 식사, 부활 후 제자들과 나눈 식사의 연장에 있다.
김동선 교수의 저서 ‘예수는 생명의 떡이요 밥은 하늘입니다’에서 밝히고 있듯이 신학적으로 성만찬과 공동식사인 애찬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세군 공동식사 신학은 성찬과 구분된 애찬의 모습이 아닌 성찬으로서의 애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식사 속에 예수의 임재, 예수 십자가의 희생을 기억하고, 천국의 식탁을 미리 맛보는 애찬이다.

현재 구세군사관학교에서는 성찬의 식사성을 잘 드러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처음 성찬에 참여하던 초대 교회 성도들은 단순한 일상 식사를 통해서도 리마 문서가 제시하고 있는 다섯 가지의 의미를 충만히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고 있는 개신교인들은 성찬에서 십자가의 희생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다른 의미들을 느끼고 고백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리마 문서가 제시하고 있는 다섯 가지 의미를 한 가지씩 강조하는 성찬으로 실행할 것을 제안한다. 한 주는 감사에 대한 성찬으로 그리고 다음 주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을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성찬을, 그리고 세 번째 주는 성령 초대의 성찬을, 네 번째 주는 성도 교제의 성찬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천국의 식탁을 미리 맛보는 식사로서의 성찬을 말한다.

이와 함께 윤리적 성찬의 모습으로 성찬을 마치고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삶에서 실천적 성찬을 행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한다면 성찬을 통해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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