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한번 없이 소수 기득권층에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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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한번 없이 소수 기득권층에 '면죄부'
  • 승인 2002.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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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예장통합 총회 4일째 되던 날, 정치부는 5개 노회장이 제출한 “총회 산하 소속목사 장로 중 외국 영주권 및 시민권 소지자는 모든 공직에서 시무할 수 없다는 결의에서 영주권 소지자를 해제해 달라”는 헌의에 대해 “현행대로 할 것”을 보고했다.

그러자 총회 석상에서는 반대의견이 불거져 나왔고 결국 거수 표결에 부쳐진 이 안건은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얻어 “영주권자의 공직 시무 허락”을 얻어냈다. 이같은 내용이 통과됨에 따라 통합내에서는 10여명 이상의 영주권 소지자가 자유롭게 목회할 수 있게 됐다.

통합의 이번 총회 결과로 영주권자의 활동영역이 대폭 확대됐다. 당초 합동이나 기성, 대신 등 대부분의 교단이 영주권자의 목회활동에 대해 뚜렷한 규제를 하지 않고 있었다. 통합과 고신, 기장만이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의 목회를 금지하고 있었던 것. 고신은 지난해 총회에서 담임목회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으며, 대신의 경우 이번 총회에서 이중국적 목사의 임원진출 허용의 안건이 상정됐으나 부결돼, 목회는 가능하지만 총회임원은 아직까지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장도 이번 총회에서 영주권자에 대한 자격완화 조항을 다룬다. 기장은 현행 “교직자는 영주권만 있어도 본 교단 교직자의 자격이 없다”고 되어 있으나 개정안에서는 “교역자가 영주권을 가지고 있더라고 본 교단 교인 자격이 있으나 외국 영주권을 소지한 교역자가 지교회의 청빙을 받은 경우에는 노회의 심사를 받은 후 취임식전까지 영주권 포기 증명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다루고 있다.

기관목회는 가능하지만 지교회 담임목회의 경우 영주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개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영주권자가 기장에서 목회활동하는데는 많은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영주권자의 공직임명 문제는 일반 사회에서도 도덕적 책임을 묻는 민감한 사항이다. 물론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모두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책임감과 국가관 등에서 의심을 받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86년 총신대 학장으로 취임한 박영희교수는 영주권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으로 학장에 임용됐다. 그러나 포기시기를 차일피일 미루자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해임된 바 있다. 통합측의 경우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를 이중국적자로 보고 이들은 일정기간 해외에 체류하기 위해 두 나라를 오가며 자녀들의 외국 국적 취득, 군입대 기피, 외화반출 등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84년 교단총회에서 금지조항을 결의했었고 이 조항이 18년만에 해제된 것.

그러나 2002년 한국교회 대부분은 세계화 시대에 발 맞추고 우수한 인재를 목회현장에 확보하기 위해 이중국적자에 대한 목회를 관대히 허락했다. 외국 유수 대학에서 장기간 신학교육을 받다보면 영주권 취득이 불가피 하다는 것이 영주권 취득 목사들의 설명이며 영주권자들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교단 총회가 이에 대한 자격제한을 두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교계 일각에서는 심도깊은 공청회 한번 없이 기득권을 가진 총대들에 의해 영주권자의 법적제한이 ‘구렁이 담넘어 가듯’ 해제되는 상황에 대해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성기문총무는 “이번 통합총회의 결정은 아직 영주권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논의의 장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소수를 위해 면죄부를 준 듯한 인상”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현주기자(Lhj@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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