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사랑’으로 뿌리내린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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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사랑’으로 뿌리내린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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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0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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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성경 위에 예술을 꽃피운 신학자(11) - 안용준 목사(목원대학교 겸임교수)

‘기독교적 사랑’으로 뿌리내린 예술

이미지 파괴의 쓰라린 현실을 틈타 비텐베르크 시의 설교단에 주역으로 선 사람이 있었다. 그가 안드레아스 칼슈타트(Andreas Karlstadt)였다. 그는 루터와 함께 비텐베르크대학의 동료 교수였다. 그런데 이시기 그는 성상파괴의 선구자로 나서있었다.

성상파괴의 첫 이론가답게 “이미지의 제거에 관하여”라는 팜플렛에서 성상파괴의 신학적 근거를 성경에서 구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논지는 세상에 남아 있는 모든 형상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속에 깊이 드리워진 우상을 깨끗하게 지우는 것이다.

보다 과격한 행동주의자로 알려진 성상파괴자도 있었으니 그가 비텐베르크의 가브리엘 쯔빙링(Gabriel Zwilling)이다. 1522년 1월 10일, 그는 뜻을 같이 하는 성직자들을 이끌고 어거스틴 수도원을 습격하여 나무로 된 제단은 물론 회화 조각작품 등을 끌어내려 불살라버렸다.

그 이전 12월 3일에는 에어푸르트로부터 날아온 일군의 학생들은 비텐베르크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제단을 파괴했다. 성탄절 이브, 구름같이 모인 사람들은 시 교회와 성 교회의 창문을 깨뜨리고 성물들을 파괴했다.
 
그들은 스스로 종교예술을 지향하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거절했다. 이제 성상파괴는 16세기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슈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두 개의 시각을 발견한다. 성상파괴주의자들은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종교개혁을 이루는 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성상파괴로 인한 위험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상파괴를 자행하는 과격한 개혁자들이 일으킨 소란을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는 이 위험성을 해결하기 위하여, 비텐베르크로 돌아왔으며, 1522년의 설교를 통하여 ‘기독교적인 사랑’을 역설하였다. 루터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한 말을 상기시킨다.

“그리스도 안에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긍휼과 자비가 있거든 …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1~4).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사랑과 겸손의 실천을 통해 다른 사람을 향할 때 놀라운 일은 시작된다. 자기중심적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며 유익을 구할 때 회복과 일치의 역사는 일어난다. 루터는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성상을 뜯어내며 파손하고 불태우는 외형적인 행위보다는 신앙 안에 굳건히 설 것을 상기시켰다.

▲ 탕자의 귀향 - 렘브란트 작, 1669년

“우리는 성상을 가질 수도 있고 가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로마 황제와 교황 사이에 성상에 관한 문제로 크게 논쟁을 한 일이 있습니다. 황제는 성상들을 추방할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성상들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양자가 모두 잘못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교황이 승리하고 황제가 패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은 자유로운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기를 원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바울이 아덴에서 행한 모습을 상기할 것을 권면했다. 루터는 바울의 행위를 통해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기의 심중 깊은 곳의 믿음을 숨김없이 표출하였다.

“바울이 신전에 들어갔을 때에 온갖 우상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우상들을 때려 부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시장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덴 사람들이여 여러분을 보니 범사에 (우상에 대한) 종교심이 많군요’(행 17:22). 그는 그들의 우상들에 반대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강제로 뒤엎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달려들어, 소동을 피우며, 제단을 헐고, 성상들을 뒤엎어 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제단을 없애버릴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더욱 굳건하게 그것들을 세우고 있을 뿐입니다. 비록 여러분들이 이곳에 있는 성상들을 뒤엎을 놓았을 지라도, 여러분들은 뉘른베르크에 있는 성상들과 세계 다른 곳에 있는 성상들을 다 뒤엎어 놓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 우리의 마음이 외형적인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또 그것들을 믿고 있지 않는 한 그것들이 신앙에 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교해야만 합니다.”

루터는 이미지가 오용되고 있는 곳에서 조차 모든 성상을 뜯어내며 파손하고 불태우는 행위는 석연찮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의를 행하는 데도 역시 ‘기독교적 사랑’(christian love)이란 태두리 안에서 얻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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