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기도회를 올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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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기도회를 올리나?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3.12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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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독교’의 추락 ① 국가조찬기도회 순수성 논란

지난 2008년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종교간 갈등이 심화됐다. 이른바 ‘고소영 내각’이라는 조롱 섞인 비판에서 시작된 정부의 종교적 편향에 대한 주장은 일정부분 사회적 공감대를 얻었다. 물론 일부 종교가 종교편향 문제를 의제로 확대면서 반사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현 정부 이후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점증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정부와 기독교의 공생 관계가 초래한 이 같은 결과를 어느 한 쪽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정교유착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 ‘정치 기독교’의 몰락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편집자 주>

지난 2011년 3월 4일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단상에서 무릎을 꿇었다. 기독교 의식 중 하나인 ‘합심기도’ 시간에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인 길자연 목사가 모든 참석자들이 무릎 꿇고 기도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 44회를 맞은 국가조찬기도회의 순수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모습은 각종 언론을 타고 보도됐고, 불교계는 즉각 반발했다. 종교적 양심, 신앙적 표현의 자유 등을 근거로 이 대통령의 행위를 변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지도자의 요청에 따라 대통령이 무릎을 꿇는 장면은 비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종교적 중립 의무 위반에 대한 여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중세시대 황제권과 교황권이 대립하면서 발생한 ‘카노사의 굴욕’에 빗대어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와 관련한 각종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이는 40여년 된 국가조찬기도회 역사상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이 기도회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됐다.

사실 국가조찬기도회는 여러 차례 순수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현 정부의 집권 초기에 열린 40회 국가조찬기도회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3,5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기독교계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기독교계는 장로 대통령의 탄생에 대한 기대를 숨김 없이 드러냈다. 

이날 설교를 맡은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하나님이 꿈이 있는 대통령을 사용하셔서 우리나라를 가나안처럼 축복받은 땅으로 만드실 것”이라며 “성경을 읽고 말씀 따라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며 신앙으로 통치할 것을 권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설교를 5년 재임기간 동안 마음에 세길 것”이라고 화답했다. 기독교계는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 정부와의 밀월관계를 확인한 셈이다.

기도회를 통한 국정홍보도 논란이 됐다. 서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42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는 세계적 경제위기 극복,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홍보성 기도가 봇물을 이뤘다. 이 때문에 국가를 위한 기도회가 아닌 대통령을 위한 기도회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단법인 국가조찬기도회의 설립도 논란이 됐다. 과거 국가조찬기도회는 기독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국회조찬기도회, 기독 경제인들의 모임인 기독실업인협회 등 평신도 단체들이 주관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03년 사단법인화 하면서 순수성 논란은 더 커졌다. 사단법인 국가조찬기도회는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등 각 지역마다 지회를 설치했다. 근래에는 해외 지부도 설립하고 있다. 또한 개별적인 회원을 받고 있으며 이들은 일정 금액의 회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난 3월 7일 열린 44회 국가조찬기도회에는 전체 수용인원이 1천여 명에 불과한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천여 명이 초대돼 큰 혼란을 겪었다.

새벽같이 나오고도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일부 회원들은 환불을 요구했다. 또 절반에 가까운 참석자들은 별실에서 스크린을 통해 참석하거나 분을 내며 자리를 떠났다. 기도회 참석자들은 식비 명목으로 5만 원씩을 내야 한다. 참석자들 일부는 “장로 대통령 임기 말에 국가조찬기도회측이 장사를 하려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원보다 2배 가까운 사람이 초대된 것에 대해 조찬기도회측은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했다.

국가조찬기도회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66년 3월. 이후 정교유착의 온상, 정권을 위한 나팔수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됐다. 특히 독재 정권 하에서 진행된 기도회는 “독재 합리화 도구”라는 오명을 쓰는 등 기독교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 시켰다.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조찬기도회는 대통령의 정치적 성과나 남은 임기의 국정 과제를 제시하는 등 입장을 밝히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40회 기도회에서 기독교 정치인 중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 참석했던 것에 비해 44회 기도회에는 여당 내 친이계로 분류되는 의원들 이외에 대다수가 불참했다. 4.11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지금,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기도회 참여 여부가 판단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또한 국가조찬기도회가 순수한 기도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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