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대부흥운동, ‘비정치화의 결과 아닌 순수 성령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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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대부흥운동, ‘비정치화의 결과 아닌 순수 성령운동
  • 김찬현
  • 승인 2006.05.3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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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 박용규교수, 한국기독교학회 학술대회에서 밝혀
▲ 1907년 대부흥운동과 오늘의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기독교학회 학술대회

 

한국기독교학회가 지난 25일 연세대 신과대에서 ‘1907년 대부흥운동과 오늘의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2006춘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평양대부흥운동의 성격과 의의’, 네덜란드 헤이그한인교회 이창기 목사가 ‘한국선교초기(1903~1907) 부흥운동의 종말론적 분석’, 나사렛대 홍기영 박사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선교학적 고찰’, 연세대 김상근 박사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과 알미니안 칼빈주의 태동’이란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 평양대부흥운동은 순수 성령운동이었다고 주장한 박용규교수
총신대 박용규 교수는 이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비롯된 초기한국교회 부흥운동이 비정치화나 몰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주변국의 침약과 민족의 위기가 한국인의 심성을 가난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적인 소망으로 부흥운동이 촉발된 것이 아닌 만큼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 비정치화의 결과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또 “1903년과 1907년 한국교회부흥운동이 기도와 말씀, 회개를 특징으로 하는 순수신앙운동이었던만큼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네덜란드 헤이그한인교회 이창기 목사는 ‘한국선교초기 부흥운동의 종말론적 분석’이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국가적, 정치적 위기가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종말론적 상황을 형성해 주었으며, 성령 역사의 좋은 토양을 준비해 주었다”고 지적하고 “한국교회 선교 초기에 있었던 부흥운동의 발발에는 한국 교인들의 종말론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 그리고 종말론적 정신적 분위기, 더욱이 종말론적 교리와 가르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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