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사사기(5) 유다지파가 베섹의 왕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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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사사기(5) 유다지파가 베섹의 왕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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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4.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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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사후의 전쟁

김영진교수<연세대 연합신대 구약학>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가나안 땅을 정복함에 있어서 지속적인 승리를 쟁취하였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지역 가운데 아직도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정복하지 못한 지역이 남아 있었다.

이들 지역에 대한 정복은 처음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전쟁에 참여하는 것과는 달리 여호수아가 죽은 후 각 지파는 나름대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러한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과 가나안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변화되어 가나안 사람들을 노예로 삼거나 혹은 강제 노동을 시켰다.

그 가운데 사사기 1:1~7절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영토를 확장하여 베섹을 점령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사사기 1:1절에 나타난 중요한 사상은 성전(聖戰; Holy war)개념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은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누가 먼저 가나안족속과 싸우러 나갈 것인가를 묻자 여호와께서 대답하시기를 유다가 가야함을 말씀하시고(2절),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가나안 사람들의 땅을 넘겨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사사기 1:1-2절에 나타난 중요한 사상은 전쟁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승리할 수 있음을 말할 뿐만 아니라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것이라는 토지에 관한 신학을 발견할 수 있다.

사사기 1:3절에서는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함께 갈 것을 청하고 이에 시므온이 응하여 함께 가나안 사람과의 전쟁에 나갔다. 3절의 기록은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의 영토 가운데서 분깃을 얻었다는 여호수아 19:1-9절의 내용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사기 1:4-7절에서는 베섹(Bezek)에서의 전쟁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베섹의 위치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지만 일반적으로 세겜에서 북동쪽으로 2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르바트 이브지크(Khirbet Ibzik)로 보고 있다.

베섹에서 아도니베섹을 붙잡았는데  아도니베섹은 이름이라기보다는 베섹의 통치자 혹은 베섹의 왕으로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어의 주(lord) 혹은 통치자(king, ruler)를 뜻하는 ‘아도니’는 ‘아도나이’의 연계형으로 베섹의 통치자란 뜻이기 때문이다.

베섹의 왕을 잡아서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랐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근동지역에서 어떤 지역을 정복할 때 행하는 방식이었다. 수족을 자르는 예는 숙곳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한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세바와 살무나의 손(목)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삿 8:6). 이처럼 고대근동사람은 정복지역의 통치자의 수족을 자르는 관습이 있었다.

7절의 70명의 왕들이란 많은 왕들이 그들의 수족이 잘렸다는 것은 많은 왕들의 수족을 잘랐다는 것이지 정확한 70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7절에 마지막에 베섹의 왕을 끌고 예루살렘으로 갔다는 것은 예루살렘 중심적인 신명기 사가의 사관을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1:21절에 의하면 예루살렘을 베냐민 자손이 여부스 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사기에서 유다 지파의 활동을 먼저 기록하고, 또 예루살렘을 강조하는 것은 사사기를 기록한 신명기 역사가들이 유다지파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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