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백석총회] ①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기적, 하나님이 이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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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백석총회] ①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기적, 하나님이 이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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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0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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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보는 ‘백석총회, 은혜와 기적의 45년’ (1978~2009년)

4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가 걸어온 햇수다. 한국 선교 138년, 한국장로교총회 설립 111년이라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비교하면 젊은 교단에 속한다. 하지만 45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뤄낸 백석총회의 오늘은 한마디로 ‘기적’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기적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다. 선교사가 되겠다는 한 청년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신 하나님께서 분열로 얼룩진 한국교회에 ‘연합의 마중물’이 되게 하셨고, 해외 선교사의 도움 없이 3평짜리 신학교에서 출발한 복음총회를 오늘의 백석으로 만들어주셨다. 

설립 45년 만에 9,725교회, 200만 성도의 대한민국 2대 교단으로 성장한 백석총회. 설립자 장종현 목사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요, 축복”이라고 말한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해마다 성장을 거듭한 ‘은혜와 기적의 45년’을 사진으로 만나본다. 

1. 백석총회의 모태, 대한복음신학교
백석총회의 모태가 된 방배동 총회신학교 전경. 백석총회는 1976년 설립된 대한복음신학교에서 배출한 졸업생들을 위해 197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복음총회를 설립했다. 

2. 교단 연합운동의 시작, ‘합동진리연합’
1978년 설립된 복음총회는 1979년 예장 합동 비주류측과 통합하며 이듬해 합동진리로 이름을 바꾸었고, 1981년 연합총회와 통합하면서 합동진리연합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당시 정부의 무인가신학교 정비령으로 군소교단들이 신학교 운영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인가 상태로 운영되던 방배동 총회신학교로 모여든 것이다. 총회 역사로는 1981년 연합측과의 통합을 교단 연합운동의 시작으로 바라본다. 합동진리연합총회는 1982년 합동정통총회로 명칭을 다시 변경했다. 총회에 ‘정통’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혼탁한 시대에 복음을 올바로 전하는 교회가 되자는 의도였다. 사진은 1981년 12월 합동진리와 연합총회의 교단 합동총회 전경. 
 

3 합동정통총회로 27년, 중형교단 도약
든든한 신학교가 있다는 것은 총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기반을 가졌다는 뜻이다. 합동정통총회라는 이름은 1982년부터 2009년까지 27년 동안 사용됐으며 중형교단으로 발돋움하며 한국교회 연합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84년 한국선교 100주년을 맞아 증경총회장 최순직 목사의 인도로 단합대회를 드리는 모습. 

4. 성경 중심의 ‘교단 노선 선언문’ 채택
1989년 9월 신승교회에서 개최된 제74회(12)회 총회에서 김준삼 총회장은 <교단 노선 선언문>을 채택한다. 당시 총회는 성경관이 불분명한 현대신학을 비판하면서 총회의 노선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적 개혁주의’ 입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때부터 총회는 신앙과 삶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한국교회를 선도해 나가는 교단이 될 것을 천명했다. 사진은 1989년 제12회 정기총회에서 직전 총회장 홍찬환 목사가 신임 총회장 김준삼 목사에게 총회기를 건네는 장면. 

5. 총회신학교 헌납과 반려
학교를 기반으로 총회가 성장했지만 총회는 더욱 큰 꿈을 갖고 있었다. 신학교를 직영으로 운영코자 했던 것. 1989년 부총회장에 선출된 후 1991년 총회장에 취임한 이종정 목사는 설립자 장종현 목사에게 신학교를 헌납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 개인의 열정과 헌신이 결집된 신학교를 총회에 헌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장종현 목사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학교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깨달음 속에 1991년 모든 서류 일체를 총회에 넘겼다. 몇 개월 후 총회는 신학교를 현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서류를 반려했다. 사진 왼쪽이 이종정 증경총회장. 

6  금권선거 없는 총회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금권선거다. 백석총회는 한국교회 연합기관들이 금권선거 논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선거제도를 과감히 개혁하고 총회장을 선출직 임원이 아닌 교단의 ‘영적 지도자’로 개념을 바꿔 추대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1990년대 후반 총회 선거 풍경.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 속 장면이다. 

7. 5000교회 비전을 넘어 1만교회로
한국교회 중형교단의 대열에 들어선 합동정통총회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9년 교단 명칭을 백석대학교와 동일하게 백석총회로 변경한 후 총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보다 2년 앞선 2007년, 당시 총회장 양병희 목사는 3000교회를 넘어 5000교회로 도약할 것을 선언하며 비전대회를 개최한다. 행사가 열린 백석대학교 운동장에는 전국에서 1만5천여 성도가 운집했다. 

8. 30년의 간절한 바람, 첫 여성목사 탄생
2009년 여성안수 결의 후 2년의 진통 끝에 2012년 첫 여성목사를 배출한 백석총회. 교단 설립 후 30년 가까이 여성도 목회자로 인정받을 날만 기다렸던 백석 신대원 출신 여교역자들이 첫 안수를 받은 날에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다. 백석총회는 여성에 대한 차별의 벽을 없애고 여성 총대, 여성 상비부장 등을 배출하며 21세기에 걸맞는 평등한 교단으로 앞서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4월 해오름교회에서 열린 서울남노회 여성 목사 안수식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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