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 보다 발을 헛딛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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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만 보다 발을 헛딛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 서헌제 교수(한국교회법학회장)
  • 승인 2021.06.0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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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정관, 어떻게 만들까’ ② 정관에 대한 인식변화 필요하다

헌법상 정교분리원칙, 치외법권 인정하는 것 아냐
교인총회 없는 중요 결의는 사회법에서 무효 판결
서헌제 교수<br>한국교회법학회장<br>중앙대 법학과 명예교수<br>​​​​​​​중앙대 대학교회 목사<br>
서헌제 교수
한국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법학과 명예교수
중앙대 대학교회 목사

제대로 된 정관을 마련하지 못해 분쟁과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잘 정비된 정관만 있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교회 분쟁 때문에 불필요한 소송비용을 지출되고 교회 위상은 추락하고 있다. 무엇보다 성도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본지는 교회 분쟁이 사회법 소송으로 비화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반드시 교회 정관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 학자이자 목회자로서 오랫동안 교회법을 연구해온 서헌제 교수의 특별기고를 연재한다.

말씀과 은혜를 중시하는 한국교회에서 교회 운영은 으레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하시는 대로 맡겨두고, 교인들은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자연히 교회 운영은 당회, 담임목사의 의중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특히 담임목사가 오랫동안 헌신하여 교회를 성장시킨 경우나 목사님의 영적 카리스마가 큰 교회일수록 교회 운영이 담임목사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하였다. 

그러나 교인 수가 늘어나고 교인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보수적인 한국교회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담임목사 교체기에 많은 교회 분쟁이 발생하는 선례를 교훈 삼아 미리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필자에게도 어떠한 내용으로 교회 정관을 마련할지에 대한 의견과 자문을 구해오곤 한다. 이를 토대로 몇 가지 조언을 드린다.    

교회 정관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정관을 고치려고 할 때 대부분 교회들은 그 교회가 소속한 교단에서 마련한 모범정관이나 잘 만들어진 다른 교회정관을 참조한다.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필자가 국내 주요 교단의 모범정관과 기존교회 정관들을 분석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교회의 양면성을 고려해야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교회 정관은 교회라는 단체의 기본규범(헌법)인데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교회는 ‘믿음공동체’인 동시에 ‘국가법상 단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의 단체로서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예배와 선교, 구제, 교육 등의 목적을 수행한다. 따라서 교회 정관은 믿음의 최고 기준인 성경 말씀과 성경에 기초한 개혁교회 대장정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등 신조, 총회 헌법과 같은 교회법의 테두리 내에서 제정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교회는 국가 영역 내에서 조직되고 활동하는 교인들의 단체이므로, 교회 정관은 당연히 실정법인 대한민국 헌법을 위시해서 국회가 제정한 법률, 특히 민법, 민사소송법, 노동법, 세법 등의 규율을 받는다.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은 교회에 대한 치외법권적 특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존 교회 정관은 대부분 교회의 믿음 공동체성에 치우쳐 국가법상 단체라는 측면을 간과한 아쉬움을 지니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본다.  

교회재산 처분, 정관의 제·개정 
교회의 주요 재산(기본재산)의 처분을 당회에 위임하거나 심지어는 담임목사에게 맡기는 교회 정관이 있다. 교인들의 헌금으로 조성된 교회의 재산, 그중에서도 본당 건물과 같이 교회 존립의 기초가 되는 주요 재산 처분을 담임목사와 소수의 장로들로 구성되는 당회에 위임하는 것은 사단의 본질에 맞지 않아 법원에 소송으로 갈 경우 무효로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례가 있다. 교인수가 줄어 교회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A교회 담임목사가 교회 건물을 B교회에 매각하고, B교회는 대금을 다 지급하고 교회 건물에 입당하여 예배를 드리던 중 A교회 교인 중 일부가 교회건물 매각에 교인총회 결의를 받지 않아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A교회 목사는 ‘교회재산 매각은 당회 결의로 한다’라는 교회 정관을 근거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교인 전원으로 구성된 총회의 의결이나 교인 전체의 의사가 정관 규정에 반영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제정·개정된 교회 정관에서 ‘교인총회의 결의 없이도 교회 재산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교인들의 총유재산에 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무효”라고 판결하였다. 날벼락을 맞은 B교회는 교회 건물을 도로 반환해야 하였음은 물론이다. 

이 사례에서 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대목은 정관의 제정과 개정은 반드시 교인들의 전체의사가 반영되는 절차, 즉 교인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쳐야 효력이 있다는 점이다. 몇몇 목사님들이나 장로들이 모여서 적당히 제정한 교회정관은 효력이 없음을 유의해야 한다.   

교회 분쟁을 예방하는 정관을 제대로 만들려면 교회법 뿐 아니라 실정법까지 고려해야 한다.
교회 분쟁을 예방하는 정관을 제대로 만들려면 교회법 뿐 아니라 실정법까지 고려해야 한다.

​​​​​​​교인총회 소집과 결의 
대부분 교회 정관은 교인 3분의 1의 청원에 의한 교인총회 소집 요청이 있어도, 당회 결의가 있어야 교인총회를 소집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사단 구성원(교인)의 기본권인 총회소집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므로 무효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J교회 분쟁이 그 예이다. 이 교회에서 교인헌금 30여 억 원을 담임목사 개인 계좌에 입금하여 유용하였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이를 논의하기 위해 교인들이 교인총회 소집청구를 하였다. 그러나 당회가 이를 묵살하고 소집결의를 미루자 교인들이 법원에 민법에 따른 총회소집 청구를 제기하였고 법원의 소집허가를 받아 교인총회를 개최하였다. 최근 이러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의 재정장부 열람권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교회정관도 문제이다. 법원은 헌금으로 교회재정을 담당하는 교인들은 재정 의혹이 있는 경우 이를 밝히기 위해 교회의 재정장부를 열람할 권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교회 정관의 대부분은 교인총회 의결정족수를 ‘회집된 교인의 과반수’ 등으로 정하여 몇 명이 모이든 과반수 동의만 얻으면 유효한 결의로 한다. 그러나 교회 대표자인 담임목사 청빙, 교회정관 개정과 같은 중요사항을 회집한 교인들로만 결정하는 것은 민주적 원리와 사단의 본질에 반하므로 무효로 볼 소지가 많다. 

참고로 민법은 일반결의사항은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하고 정관의 개정, 교회해산 결의 등 중요사항은 ‘교인 전체의 3분의 2 또는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요하는 특별결의사항으로 규정한다. 

필수 조항이 빠진 정관
기존 교회 정관에는 국가법에서 반드시 포함하도록 정한 사항이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소득세법은 종교활동비의 정의와 지급기준을 종교단체의 규약(정관)에서 정하거나 교인총회의 의결·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정관에 종교활동비 관련 조항을 두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두는 정관이 의외로 많다. 이렇게 되면 종교활동비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받지 못함은 물론 세무조사의 대상이 될 소지가 있다. 소득세법은 구분기장·관리의 유무로 세무조사의 범위를 제한하므로 교회 정관에는 반드시 구분기장·관리의 원칙과 방법을 정해야 한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교회
흔히 교회는 세상을 초월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교회 정관도 성경과 교회법만을 염두에 두고 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눈과 머리는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를 향하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발은 이 땅을 디디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자칫 하늘만 쳐다보다가 발을 헛디디는 우(遇)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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