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맞는 정보만 보려하는 현대인, 비판적 수용 필요
상태바
입맛 맞는 정보만 보려하는 현대인, 비판적 수용 필요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8.10.16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붙은 가짜뉴스 공방 어떻게 볼 것인가?(하)

‘우리는 지금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는 마냥 좋은 일만 펼쳐질 줄 알았다. 국민들이 직접 정보를 맞닥뜨리고 의사 결정을 함으로써 민주주의는 일약 성취를 이루고 정부나 매스미디어와 같은 21세기의 ‘빅 브라더’로부터 자유로워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 손 안에 쥐고 있다고 생각한 정보는 말 그대로 홍수처럼 덮쳐 숨통을 조였고 그 속에 허우적대는 우리는 무엇이 마실 물이고 못 마실 물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든 지경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첫 문장에 다소 수정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가짜뉴스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주 가짜뉴스에 몸살을 앓고 있는 기독교계의 실태를 지적했지만 가짜뉴스는 교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국무총리와 정치권까지 나서 해결을 촉구하고 대책위를 꾸릴 정도로 우리 사회 전체, 아니 전 세계에 퍼진 암 덩어리다. 스스로를 지성인이라 자부했던 우리가 왜 이렇게 가짜뉴스에 쉽게 휘둘리는 걸까.
 

우매한 군중? 왜 이렇게 잘 속나

이 시대의 가짜뉴스는 파괴력이 남다르다. ‘언론 기사’의 옷을 입고는 불과 몇 분, 몇 시간 만에 진짜처럼 둔갑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후속 보도’가 쏟아진다. 뉴스가 국내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유럽 어느 국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거나 ‘미국 모 매체가 이렇게 보도했다더라’는 식의 물 건너 온 소식들은 진위를 확인하기가 몇 배로 벅차다.

그렇다면 21세기에 가짜뉴스가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대중들이 거짓말에 쉽게 속아 넘어갈 만큼 무지하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우리나라만 봐도 역사상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학력 시대를 보내고 있다. 불과 백여 년 전만해도 글자를 못 읽는 사람들이 넘쳐났음을 생각하면 가짜뉴스의 원인을 대중들의 교육 부족으로 돌리긴 어렵다.

실마리는 오히려 ‘지식이 넘치는 대중’에 있었다. 과거 매스미디어가 정보 전달의 절대적 위치에 서 있을 때 대중들의 신뢰 기준은 미디어가 전하는 정보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대중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매스미디어의 권위가 하락하면서 신뢰의 기준은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믿는 주변 인물이 됐다. 이젠 매스미디어가 던져주는 정보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넘쳐나는 정보 중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선택해 받아들이고 믿기 시작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편향’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가짜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더 빠르고 넓게 퍼진다.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대중들이 듣고 싶어 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대선 기간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소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 선언을 했다’는 가짜뉴스였다. 미국 MIT공대 미디어랩 연구팀은 가짜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28배 더 많이 공유된다는 연구를 사이언스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AI 기술이 가짜뉴스 확산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포털 사이트나 SNS의 알고리즘은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로 인해 이용자가 특정 성향 정보만을 계속 접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른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들만 접하면서 가짜뉴스를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더 커지는 것이다.

 

문제 공감하지만 대책은 ‘제자리’

가짜뉴스로 홍역을 치른 미국을 비롯 서방국가들은 우선 유통 경로에 주목했다. 대표적 소셜미디어 사이트인 페이스북은 가짜뉴스 필터링 테스트를 실시하고 구글과 함께 ‘크로스체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의욕만큼 가짜뉴스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지엔 부정적 시선이 지배적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의 특성상 이용자들의 사후신고에 의지한 시스템으론 가짜뉴스의 확산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대책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일 가짜뉴스 대책을 내놓기로 했지만 발표 당일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발표를 연기했다. 그 이유는 논의된 대책들이 △해외 인터넷 사업자들의 자율 규제 참여 유도 △온라인 모니터링 담당관제 △대국민 교육과 홍보 강화 △유포자 처벌 강화 등의 수준으로 새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정부 차원의 강경한 조치는 자칫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안고 있다. 어떤 수준의 뉴스까지 법적 조치가 필요한 지 사회적 합의도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대책은 뿌리를 뽑지 못한 채 겉만 맴돌거나 국민의 입에 재갈만 물리는 악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에는 발이 없다

‘발 없는 말’은 어떻게 천리를 갈 수 있었을까. 발 달린 사람들이 소문을 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발 없는 가짜뉴스는 전달하는 사람이 없이 스스로 퍼질 수 없다. 가짜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빨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덩치 큰 매스미디어의 활약이 아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자극적 뉴스를 열심히 퍼 날랐던 대중들의 힘이다. 가짜뉴스를 막을 뚜렷한 대책이 눈에 띄지 않는 이때, 가짜뉴스 근절은 정보 소비자인 우리들의 손에서 시작돼야 한다.

가짜뉴스는 교계와 사회,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이 없지만 크리스천이라면 자신이 거짓의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이의용 교수(국민대)는 “자신에게 전해지는 정보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고가 필요하다”면서 “보고 싶은 정보만 보려하지 말고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고 한국교회에 당부했다.

정보의 이동 속도도 문제다. 기독교인이라면 무조건적인 퍼 나르기보다 정보를 분별하는 성경적 기준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교회 가짜뉴스 세미나에서 발제했던 정재영 교수(실천신대) 역시 단순한 정보의 소비자가 되기보다 비판적인 수용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뉴스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지를 보기 보다는 바른 신앙관 위에서 작성된 내용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