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사용한 독특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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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사용한 독특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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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5.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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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주기도문 번역안의 ‘아버지’ 호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형기 교수<전 장신대 교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381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버지’ 개념을 중심으로

우리는 ‘아버지’라는 용어를 양보할 수 없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대면하시거나 하나님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이 아버지라는 말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된 것도 그리스도 예수 자신이 사용하신 이 하나님 칭호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하는 용어는 모든 시대의 기독교 공동체를 연결시키고, 이 공동체로 신앙의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한다. 더군다나 이 용어는 삼위일체의 내재적 관계의 삶 속에서 그리고 모든 경제적 차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우리들에 대한 관계를 인격적인 관계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용어가 하나님을 생물학적 남성으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남성들이 지닌 남성적 특성들만이 하나님께 속한 유일한 특징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다만 어느 정도의 인간들의 부성(父性)을 사용하신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인간들의 인격들에 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 남성이건 여성이건 인간의 특성들을 포용하시고 완성시키시며 초월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된 여러 은유나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을 대면해서 사용하신 독특한 개념이다.

따라서 성서적인 내러티브가 말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와 관계에 대한 성서적 내러티브의 기본 문법을 매우 존중한다. 이 문서에서는 이에 관해 추호도 양보가 없다. 하지만 성서가 하나님에 대해 여성 의미들로 말하는 경우도 있는 바, 그것을 존중해 우리의 생활 속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통전성의 문제’와 ‘교회와 사회의 질서와 역할 기능’에 대해서 새로운 이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아들 이미지가 주님(야훼, the Lord)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특징짓기 위해 사용됐다. 이 주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시다(신 32:6). 그도 그럴 것이 주께서 이스라엘을 창조하셨고, 세우셨기 때문이다. 이 주님의 부성(父性)은 사랑의 돌보심과 긍휼이다(호 11:1). 이 부성과 관계된 표현들 가운데 종종 ‘여성적인 것’으로 지칭되는 속성들이 많다. 이러한 속성들은 더더욱 모성(母性) 이미지에 의해 강화돼 있다. 이 주님은 산파(시 22:9), 유모(사 49:15) 및 자기 자식을 위로하는 어머니(사 66:13)와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은 주님을 결코 어머니라 부르지 않는다.

본 문서는 하나님의 부성이 신약성서에서 그 중심에 놓여 있다고 본다. ‘아바 아버지’라고 절규하신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막 14:36), 마침내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신 기도(눅 23:46), 그의 유아기의 이야기, 그의 수세시의 메시야 선포 및 그의 선포와 기도에서도 발견된다. 본 문서는 요한의 언어 사용에 있어서 아버지라는 용어는 결코 여러 다른 용어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고 다시 한번 역설한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까지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복음서 내러티브에 보면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또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도록 강권하신다. 바울은 은혜로 되는 입양에 관련하여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도록 하였다. 더욱이 예수님에 의하면, 하나님의 부성적 돌보심은 다른 피조물들에게도 베풀어진다(마 6:26).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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