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데모에 대한 일본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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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데모에 대한 일본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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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5.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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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진 목사<일본복음선교회 이사장, 아시아종교연구소 소장>


최근 중국의 반일 데모가 격화되자 일본 언론은 연일 대서 보도하였고, 한국에서도 반일 데모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중국의 반일 데모에 한국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5월 초까지 일본 일간지나 주간지 및 월간지는 여기에 대한 다양한 보도와 평가가 내려졌다. 일본은 한중의 반일 데모로 두 나라의 일본 방문객이 한국은 작년도에 비하여 2할 감소, 중국은 무려 50% 감소하였다고 전한다.

먼저 한국 교회나 사회가 유의할 것은 독도를 일본 땅으로 선포하거나 주장하는 소리들이 마치 일본 모든 나라가 다 그렇게 외치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닌, 시마겐 현 의회의 결정이며 우파 정치가들과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의 견해이다. 대체로 일본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며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는데, 대단히 신중하거나 침묵한다는 사실이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치는 직접적 주장은 이해관계가 걸린 시마노겐이 수백 년 전부터 독도와 울릉도를 일본 땅으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해 왔다. 일본은 한국을 합병하는 1905년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선포하였는데, 물론 침략에 의한 일방적 선포로, 서울 성수동의 일본인 교회 요시다 목사가 말한대로 한국 침략의 전주곡이었다. 금년도 독도를 일본으로 편입을 선언한 100년을 맞아서 다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1. 반일 데모에 대한 일본 여론의 세 방향

한국과 중국에서 반일 데모에 대한 일본 언론이나 여론의 반응은 대략 세 갈래라고 본다.

첫째는 양심적으로 일본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물론 이러한 여론은 자신의 목소리로 보다는 국제 사회의 여론을 등에 업는다. 일본의 일부 언론들은 서방 언론들이 일본은 과거를 철저히 청산하고 회개한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는 기사를 소개한다. 노골적으로 반일 데모의 원인 제공자는 일본이라고 비판한다.

4월 27일자 ‘주간 금요’는 노골적으로 두 나라의 데모에 대한 일본 언론 태도를 비난하였다. ‘인권과 메디아’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까지마 히루아끼는 중국 반일데모에 대한 일본 언론들의 일방적 보도를 신랄하게 질타하였다. 즉, 일본의 반성은 촉구하지 않고 중국만을 매도한다고. 4월 27일자 아사히신문 역시 해외의 반응을 보도하였다. 싱가폴 등 일본의 침략을 받은 동남아 언론들이 일제히 반성과 회개가 없는 일본이 일차적 책임이라는 뉴스나 사설을 전한다.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에는 불만, 중국은 불신’이라는 제목으로 동남아 언론 내용을 요약한다.

양심과 합리에 호소하는 지성파적 언론의 대표적인 것은 아사히 구라파 특파원 外岡秀俊은 영국의 국제분쟁소를 시찰하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해양 경계로 인한 분쟁 지역이 420건이 되는데, 그 중에 약6활은 미해결 상태임을 소개하면서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의 섬 문제 해결은 평화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드는 민족주의를 경계한다.

후소사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한 4월 일자 동경신문 24면 기사는 대단히 특이하다. 내용은 “일본 교과서 검정 결과에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받은 아시아 국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부의 교과서가 지금까지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한국 언론을 소개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서는 자국의 역사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중학교 교과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죽도를 테마로 전국적으로 특별 수업을 한다”, “한국 국정교과서는 전체 359페이지 중 일본 식민지 관계를 무려 61페이지로서 17%나 된다. 그러나 일본은 불과 2,3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국정 교과서는 일본 식민지 정책이 한국의 민족 말살 정책이라는 식으로 반일 감정을 유도한다”고 한국의 교육을 비판한다. “일본 국정교과서는 8종인데 비하여 한국은 하나뿐”이라는 것도 부언하면서 교육인적자원부 담당자의 말을 인용한다. “역사 국정 교과서를 여러 개로 하면 혼란을 일으킨다”고. 동시에 한국 현대사를 집필한 경남대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반일 데모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는 것을 소개한다. 젊은이들의 눈은 냉정하다고.
   

둘째는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일본은 이미 과거는 다 청산하였다고 하면서 무반성을 고집하는 태도이다. 가장 심한 극우파 언론은 아마도 주간지 SAPIO일 것이다. 이 잡지는 ‘반일 혁명의 준동’이라는 글에서 한국과 중국의 반일데모는 내부의 시나리오라는 식으로 보도한다. 일부 언론은 한국에 대하여도 일본은 이미 19965년 대일청구권 문제 때 그리고 역대 수상들이 사죄하였다고 말한다. 두 나라의 반일데모는 국내 정치적 목적에서 의도된 각본으로 아예 무시한다.

4월25일자 아사히신문 1면 고이즈미 수상 집권 4년 여론조사에서 중국이 일본은 역사의식에 반성을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ㅎ는가에서 71%가 납득할 수 없다고 한데서 일본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48%가 안하는 것이 좋다, 반면 계속하는 것이 좋다가 36%로, 이것은 작년도의 39대38의 팽팽한 것에 비하면 전진이다. 일본의 국민들의 정서도 민족주의가 강한 편으로 나가고 있다.

셋째는 일본의 문제를 어느 정도 시인하면서도 중국과 한국의 대내 문제가 반일로 나갔다는 보도이다. 대표적인 것이 4월 마지막 주간의 뉴스위크지의 보도이다. 반일 데모에 앞장서는 중국과 한국의 신세대라는 표제 자체가 두 나라의 교육이 반일 감정을 부추기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언론이지만 일본의 언론과 맥을 같이한다.

뉴스위크지 부편집장은 일본은 역사교과서 문제에서 과거를 청산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독일에서 배울 것을 주문한다. 반면 한국 역시 역사교과서에 김정일의 부도덕성과 북한주민의 아사는 보도하지 않음으로 이념적 편향성을 나타낸다고 하였으며 중국은 공산주의 이념 교육으로 민족주의를 강화한 나머지 일본을 주적으로 함으로 신세대가 특히 반일 데모에 앞장선다고 하였다.
   

두 나라의 국내 문제로 돌리는 보도에서 주목할 사실은 한국 학자들이나 한국인들이 한국의 반일 데모는 인기가 떨어지는 노 대통령과 참모들의 교묘한 여론 조작이 작용한다고 우려한다. 배연홍 씨는 `반일로 달리는 한국 사회`라는 제목의 글(중앙공론 5월호)에서 한국의 과잉 반응과 일본의 무관심한 대응이 사태를 야기하였다는 논조이며 “독도문제 보다 더 깊은 문제가 내재해 있다”고 한다.

물론 한국 정부의 과거 청산에는 정치적 복선이 개재되었다는 것이다. 지동욱 씨는 역시 같은 잡지에서 ‘몰락하는 한국의 보수 세력’이라는 글에서 보수 세력의 몰락이 반일 감정으로 발전한다고 평하였다. 시즈오까 현립대학의 小 針進은 ‘죽도 문제에 대하여 냉정한 20대의 정치 의식’이라는 글에서 한국의 20대는 도리어 정치, 역사, 일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는 냉소적 태도이며 도리어 일본에 우호적이라는 여론 조사를 인용한다.
 

2. 부활하는 일본 민족주의
극우화의 경향을 띄는 일본 최근 극동 3국의 긴장과 갈등 관계는 먼저 일본이 독일식으로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거나 회개하지 않은데 있다. 이것으로 근자에는 서구 언론으로부터 일본은 철저히 회개한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는 충고를 받고 있으며 일본 언론도 이것을 소개한다. 그러나 극우의 중심에 있는 고이즈미 수상이 집권 4년째로, 인기가 최고인 것으로 일본 언론은 전한다.

그 이유는 일본의 민족주의가 다시 부흥하는데 기인한다. 그 동안 일본은 경제 침체로 좀 위축되어 국제적 위상이 약화된 것으로 인식한다. 특히 중국의 경제 성장과 무력 강화, 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하는 듯한 분위기에 위기감을 국민들이 느끼고 있다. 특히 신세대들의 정치 무관심과 가치관의 혼돈으로 인하여 과거 세대들이 가졌든 국가관이 시들어 진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다. 이것은 극우파의 대표이며 동경도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료가 문예춘추 5월호에 ‘현대 청년들의 병리를 해부한다’는 기사에서 엿볼 수 있다. 물론 일본 청년들의 도덕적 무질서와 가치관의 부재에 대한 대안으로 극우적 이념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최근 일본 정치가들은 노골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조상들에 대한 존경이며 종교라고 변명한다. 여기에 앞장서는 자는 물론 고이즈미 수상이다. 중국과 한국에서 격한 반일 데모에도 불구하고 4월에 80명의 국회의원들과 86명의 개인들이 오전 8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다. 그들은 참배를 자신들의 종교 의식으로 정당화한다. 고이즈미는 4년 째 참배를 강행한다. 금년 초 한 민주당 의원은 예산심의 때 수상의 참배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지를 질의하자 고이즈미는 적절히 알아서 하겠다는 식으로 답변을 기피하였다. 고이즈미는 내각과 국회에서 신보수파의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에 극우적 행동을 자제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과거 일본 정부나 법은 이것을 위헌으로 결론 내린 적이 있다. 83년8월21일 나까소네 수상이 참배한 것에 대하여 한국과 중국은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그리고 85년 8월14일 일본정부는 정치가들의 공식참배는 위헌의 의심은 없다고 통일된 견해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92년 2월 28일 구슈겐의 야스쿠니 소송판결 (후꾸오카 고등법원)은 수상의 공식 참배의 계속은 위헌의 의심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정 판결하였다. 2004년 7월 이 문제는 다시 확정하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최근 여기에 대하여 공명당은 엄격한 분리보다는 국립추모시설설치 제안한다. 국립의 무종교적 묘지 일종의 국립묘지 안으로 동경기독교 대학 이나가끼 교수도 동일한 주장을 이미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27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의하면 한국과 일본의 전몰자 유가족 약 1천명이 고이즈미 수상과 동경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료의 신사 참배는 위헌이라고 고소하였다. 이들은 참배를 위헌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원고 일인당 3만원의 벌금을 부과하여 달라고 청원하였다. 그러나 동경지방법원은 “참배로 원고들의 법률상 보호받을 이익이 침해되거나 종교상의 규제도 받을 것이 없다고” 청구를 기각하고 말았다.

이들의 참배가 위헌이냐의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이들이 고소한 것은 2001년 고이즈미가 야스쿠니 신자를 참배하고 이시하라가 2000년과 2001년에 참배함으로 중국과 한국이 항의할 때였다. 1천 명의 원고 중에는 한국인이 7백 명이고 일본인이 3백 명이었다. 이 판결에 대하여 원고들이나 변호사들은 강력한 항의의 목소리를 내었다. 참고로 일본인들의 반수 이상이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진자 참배를 찬성한다고 보도한다. 지난 2월 12일자 뉴욕 타임지는 137년 역사에 상업광고 전문가로 활약하든 한 일본인이 야스쿠니 진자의 최고 책임 중이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3. 신보수파의 헌법 개정 논의

일본은 지금 헌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이미 내각에서는 통과가 되었다고 하는데, 일본 사회의 뜨거운 논쟁이다. 핵심은 천황제를 강화하는 것과 자위대를 단순한 방어에서 어느 정도 공격에 대비하는 군사로 강화하자는 것이 주 골자이다. 민족주의와 맞물려 있는 셈이다. 물론 국수주의자들이 과거와 같은 일본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대하여 반대 견해도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4월29일자 주간지 ‘금요 주간’은 헌법 개정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면서 개정은 자민당을 위한 헌법이라고 비판한다. 정치계의 신보수의자들은 일본은 정상적인 군인과 일본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강경 조취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임지는 최근 일본의 3인방 극우파로 야수카주 하마타(49세 국회의원), 케이조 타케미, 사케루 이시바를 든다. 이들은 2차 대전은 과거 일이라고 외면한다. 이들의 주장은 “우리는 어릴 때 받은 반전 교육과 오늘의 국가 현실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헌법 개정을 위하여 신보수파들은 ‘새로운 세기를 위한 안전과 기초 건설’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이들 신보수파는 일본이 번영하였고 국제사회에서 많은 공헌을 하고 있으며 자유로운 언론이 있고 핵무기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유엔 상임이사 자격이 충분하다고 역설한다.

4. 국수주의에 반대하는 일본 교회와 교사 노조

지난 4월 7일 한 동경도립학교 입학식에서 한 교사는 기미가요 제창에 반대, 입학식을 불참하였다. 그러다가 졸업식 때는 아예 기미가요 제창에 전원 기립해야 하는데 용감하게 앉아있었다. 그는 학생들이나 선생들이 자기를 응시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하였다. 일본은 지금 기미가요와 일장기 문제로 자년도 250명이, 금년에도 이미 50명의 교사가 해고되었다.

일본은 해마다 2월11일은 일본 건국 기념일로 공휴일이었다. 이날 건국 기념행사가 간단하게 진행된 반면 저녁에는 일본 여러 곳에서는 일본 기독교 단체들이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부활하려는 교육법 개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NHK는 저녁 뉴스에 간단하게 반대 집회를 보도하였으나 아사히신문 아침 뉴스는 일절 보도가 없었다. 작년 19월 23일 동경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료는 일장기(日ひ丸)와 기마가요(君か代)에 기립하고 제창하는 것을 강제화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라크에 자위대 파병 연설에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 일본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기독교는 물론 3백 명의 ‘교육 노동자’들이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2월 11일에 지역별로 집회를 하였다. 교육노동자들은 정부가 일부 기업의 노동운동을 압박하고 복지를 없이하고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에 반대 투쟁을 전개한다. 이들은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전쟁의 국기와 노래로 단정한다. 이 단체는 일본, 미국 한국과 연대를 제휴하는 것 같다.

이 법안에 반대하여 기립을 반대한 한 도립고등학교 교사는 학교를 떠나면서 학생들과의 마지막 인사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 시대는 무언가 이상하다. 이러한 시대를 바꾸기 위하여 지금부터 이러한 일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하였다. 최근 NHK의 수석 프로eb서는 군대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기 위하여 준비하였으나 자민당 간사장에게 강제로 삭제당하여 이것을 눈물로 고발하기도 하였다.

일본이 군국주의적 과거로 돌아가려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많은 기독교 단체들도 항의 집회를 하였다. 일본 기독교는 고이즈미 총리와 동경 도지사 이시하라가 야스쿠니 진자 참배하는 것을 항의하여 위헌 소송을 제기하고 기독교 신자들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현재 일부 일본 기독교회가 전개하는 정부 상대의 투쟁에는 자위대를 위헌으로 간주하고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라크 파병 거부운동과 군사비 지불 반대운동, 야스쿠니 진자 국영화 반대운동을 전개한다. 심지어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종군위안부 책임 추궁을 위한 각성위헌회를 구성하기도 하였다.
 

5. “독도는 한국 영토이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외치는 일본의 양심 세력이 있다. 마치 조영남 씨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친일 선언’을 쓴 한국인이 있듯이 일본에도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논문을 책으로 출판한 교수가 있다. 2000년에 이미 시마노겐대학의 나이토우 세이쮸우는 [竹島(鬱陵島)をめくる日朝關係](독도를 둘러싼 일조 관계)라는 저서를 5년 전에 출판하였다.

나이토우교수는 저서에서 시마노켄이 일찍부터 울릉도와 죽도를 일본 영토로 하려는 집요한 노력을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19세기에 이미 일본 정부 스스로 독도는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고 시마노켄에 통보하였다는 역사를 기록한다. 이것을 기초로 일본 기독교 개혁파 교회의 우르시자키 히데유키 목사는 일본 국수주의에 투쟁하는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그는 얼마 전 한국에 가서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것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러나 한 일간지가 그를 일본 개혁파 교회의 총회장으로 소개하면서 마치 일본을 대표한 것으로 보도하여 그는 지금 일본 교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 언론의 신중한 보도가 요구된다. 아직도 정정하는 보도를 하지 않았다고 서운해 한다.

그는 얼마 전 미국에서 온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모임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의 신사이며 천황을 위하여 싸운 사람만 제사하며 독도문제는 정치적 외교적 문제로서만 다룰 수 없다고 말한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근거로 1699년 막부는 울릉도 항해를 금지하였고 1876년 시마네현은 독도를 일본 영토로 확인해 달라는 청원을 정부에 했는데, 77년 내무성은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결론을 통보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지금에 와서는 정직한 자세로 임하지 않는 데 대하여 일본 기독교인으로 항의 투쟁하는 것이다. 그는 독도를 위하기보다는 일본 정부의 비정직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5월1일자 일본 크리스찬신문 9면에는 서울 성수동의 일본인교회 요시다게이조 목사가 ‘다쎄시마 편입은 침략의 전제적 행동: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제목으로 기고, 한국에 힘을 실어 주었다. 독도는 512년 신라시대 때 한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으로 볼 때도 한국 것이다. 100년 전 일본이 한국 침략을 착착 진행했는데, 군대 경찰을 해산하고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즉, 알맹이를 제거한 상태에서 시마네현은 독도를 일본으로 편입시킸다.

한국은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반대할 수 없었다. 시마노겐의 독도의 날 제정은 일본 군국주의 망령이 부활한 것이다. 얼마 전 일본 NCC 총무를 만나서 협조를 구하였다. 오래 전에 이미 일본 NCC 총무가 단독으로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하여는 일본 기독교회는 철저히 일본의 국수주의를  반대한다고 하였다.

6. 영향받지 않는 한류 붐

한류 붐에 대한 4월 27일자 아사히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가 34%로 중국의 51%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그런대로 본다는 사실이다. 특이한 것은 일본의 30대세에서 50대 여성들의 반이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즐긴다. 겨울연가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본다는 사람은 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류 붐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이 여론이다. 많은 상업광고나 백화점에 ‘욘사마’의 사진은 아직 인기이며 지난 5월 첫 주 일본어 판 뉴스위크지는 한국 배우 3인과 감독의 인터뷰가 크게 보도되었다.
      

맺는말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하는 극우적 발언이나 주장은 일본 사회 전체의 분위기는 아니라 정치가들과 시마네 현의 주장이다. 일본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평온한 편이고 언론이 중국과 한국의 반일 데모에 관심을 가지며 나름대로 진단을 한다. 그러나 일본의 배타적 민족주의 혹은 국수주의는 하나의 종교로 보아야 한다.

일본은 국민과 국가를 통합하는 이데올로기가 없기 때문에 신도 중심의 민족주의 종교로 일본의 우월성을 내세운다. 일본은 태양신의 나라라는 잘못된 선민사상이 민족주의의 핵심이다. 일본은 이 점에서 세계적 가치관이 없는 나라이다. 여기에 대하여 한국 교회나 사회는 너무 흥분하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 정치적 의도에서 반일 감정 조장은 물론 일본이 먼저 간파한다. 한국 교회는 일본이 기독교 국가로 변화하여 배타적 민족주의를 버리고 세계주의로 나가도록 선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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