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에서 얻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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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에서 얻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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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4.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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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환 목사<칼빈대 총장>


지난 1994년 1월 17일 새벽, 강도 6.6 규모로 미국을 뒤흔들었던 지진은 1년 후 같은 날 1월 17일 새벽, 일본 고베 지역에 강도 7.2 규모로 덮쳐 와서 온 세인들을 공포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10년째인 지난 해 12월 말 동남아시아 지역을 덮은 거대 해일의 피해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바다 속 지각 변동은 그야말로 날벼락이 아니고 무엇일까.

천재지변에서 오는 불행은 예수님 당시에도 일어났다. 또 인재지변에서 오는 불행도 있었다. 그 불행의 예가 누가복음 13장에 소개되고 있다.

첫 번째 소개된 사건은 갈릴리인들의 유혈 사건이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폭군 빌라도는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흘린 피로 제사를 지냈다. 두 번째 소개된 사건은 실로암에 세워진 망대 탑이 무너져 한꺼번에 18명이 치어 죽은 불상사였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강한 지진 때문인 것으로 본다. 이렇게 폭군이나 지진으로 인해 생겨진 희생자들이 겪는 불행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더구나 잘 믿는 성도들이 당하는 불행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수용할 것인가.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성도들도 이 세상의 일반적 불행에서 반드시 제외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옛날에 야곱이 보낸 험한 세월이나 욥이 겪은 극한적인 시련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거나 사랑하시지 아니하여 겪은 것은 아니다.

또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을 로마로 호송한 알렉산드리아 호는 심한 풍랑으로 파선됐다. 바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다음 장에 보면 극적으로 바다에서 구조된 바울이 모닥불을 마련하려다 독사에게 물려 죽게 될 뻔한 사건이 나온다. 하필이면 왜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도록 섭리하셨을까. 우리는 바울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 섭리의 퍼즐 앞에 성급한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우리는 바울이 뱀에 물려서 그 독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순을 당장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울이 뱀에 물린 다음, 멜리데 섬은 복음화 된다. 여기서 그는 고난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주님은 실로암 탑이 무너져 죽게 된 희생자들의 비극을 소개하신 다음, ‘포도원 비유’(눅 13:8~9)로 회개의 열매를 맺을 것을 권하신다. 메시지의 핵심교훈이 여기에 있다. 포도원 사이사이에 무화과를 심은 주인은 열매를 기다려 찾았다. 그것도 3년이나 찾았다. 그러나 열매를 찾지 못하게 될 때 주인은 찍어 버리려 했다. 그러나 농부가 간청을 했다. “한 해만 더 참으소서. 내가 거름을 주어 가꾸리라 만일 금년에도 열매가 없으면 찍어 버리소서”라고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열매 없는 무화과가,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가 바로 자신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무화과 나뭇잎처럼 겉만 무성한가. 지극히 종교적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주님이 요구하시는 신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나무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저리 뒤틀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목재로 쓰일 수도 없어 하찮은 대접을 받을 뿐이다. 그러기에 이 나무들은 오직 열매를 맺을 때만이 존재 가치가 있는 나무다.

나를 살리시고 구속하신 주님의 은혜와 나를 불행에서 건져주신 주님의 섭리를 깨닫고 오직 열매 맺는 삶을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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