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를「노동(근로)자」로 지칭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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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를「노동(근로)자」로 지칭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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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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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용어 바로 쓰기(148회)
 

최근 서울에 어느 큰 교회의 성직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교회에서 노동쟁의를 벌인 일로 교계의 많은 관심과 비판의 의견들이 비등(沸騰)했었다. 과연 ‘성직자’가 노동자이며 교회를 쟁의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옳은 일인가?


교회와 성직사회가 세속적 물질가치 영역과의 구분할 기준의 벽이 무너진 것 같아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성직자’라고 하면 ‘기독교회에서 성경에 근거한 규범과 교의를 좇아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헌신된 자로 봉사하는 성스러운 직무와 직분자’를 말하는 것이고 ‘노동자’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얻기 위해 육체적 활동을 통한 일을 하거나 체력이나 정신을 쓰는 행위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직자와 근로자는 각각 다른 상황적 배경에서 그 기능과 신분, 목적에 있어 본질적으로 동류(同類)로 볼 수 없다. 흔히 성직자를 <나실인;Nazirites>(민6:2)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나실인>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아 성별되어 헌신된 삶을 서원한 사람(삿13:5-7)으로서 금주(민6:3-4), 삭발금지(민6:5), 시체를 멀리할 것(민6:6-7), 몸의 거룩한 구별(민6:8), 도덕적 정결(암2:11-12) 등을 지키며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살아가는 자인데 성직자의 삶과 정신도 여기에 준한 사람으로, <나실인>의 삶 그 자체와 방불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에 비하여 노동자는 문화적 영역에서 자기실현과 성취,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행복을 위해 신성한 노동의 대가를 추구하는 것으로 영적 세계를 추구하는 종교적 영역의 성역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성직자도 보수를 받기 때문에 노동자라는데 성직자의 급여는 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의 반응으로 자원하여 봉헌한 예물을 구원사역에 수종드는 성역비로 대어주는 것인 만큼 대가성 보수의 개념이나 노동임금으로 볼 수는 없다. 성직자가 임금과 관련하여 노동자로 규정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 지도자이기를 포기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교회의 본무(本務)는 성경에 토대를 둔 특수한 종교정신이 있어 문화적 요구논리와는 구분이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위대한 정신을 통한 만민구원에 헌신된 사람이 자기 일신상의 이해관계와 문제를 내걸어 그리스도가 머리되신 교회의 신령한 주체를 노사관계로 설정하고 세력화하여 쟁의를 벌이는 행위는 성직자의 본분과 본연을 저버린 처사가 아닌가 한다.


하나님의 교회와 관련된 일을 쟁의의 내용으로 삼는 것은 그 쟁의의 대상이 궁극적으로는 주님이 되신다는 격인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교회의 영적 가치와 신령한 질서는 사랑, 겸손, 화평, 용서, 헌신, 봉사인데 이 가치와 질서가 무너지면 이미 교회는 아닌 것이다. 성역을 노동이나 근로의 차원으로 인식하는 것은 성직을 부여한 하나님의 경륜에 대립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국교가 아닌 조건에서 성직자(목회자)가 노동자 신분으로 자처하는 부작용은 기독교의 본연을 잃게 되며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성직자의 생존수단은 노동쟁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임을 인식해야하고 교회도 성직자의 후생을 최선의 기준으로 도울 때 복을 받게 된다.


 


 

김석한교수 / 천안대 신대원 실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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