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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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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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1.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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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환 목사/천안대·백석대학 인성교육훈련원장

지구의 위험 수위는 성장의 과속이다. 과학의 발전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불안하다. 마치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시날 평지에서 일어난 바벨탑 사건이다. 각 나라는 과학 경쟁에 혈안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성, 기본 윤리, 인권문제는 과학에 밀려 어쩔 수 없는 퇴색의 길을 걷고 있다.

성장과 성숙은 말의 뜻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장’(成長)이 자라서 커나가는 양적인 증대라고 한다면, ‘성숙’(成熟)은 모든 것을 갖춰 충분히 발육되어 자란 것을 뜻한다. 어떤 경험이나 습관을 쌓아 익숙해진 것이다. 또한 때와 환경이 무르익은 시간적 성숙기를 말할 수도 있다.

오늘의 사회는 성숙의 본질보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장 위주의 사회로 점점 가치 폭락하고 있다. 이런 성과 위주는 날림식·땜질식으로 그 때마다 급한 불부터 꺼나가는 요식적 방편이 될 수 있다. 이런 성장 위주의 사회는 토대가 없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했다. 예수님의 성장이 균형과 조화 속에 성숙되어 간 아름다운 모습이다. 키와 용모만 어른스럽고 그 생각과 행동이 어린애같이 유치하다면 성숙이 아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천안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앞자리에 여대생 2명이 타고, 필자의 동년배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옆에 앉았다. 앞자리에 앉은 두 여대생이 의자를 뒤로 젖히자 여유 있는 공간이 생겼다. 반면에 뒤에 앉은 우리 둘은 자리가 비좁아 참기 힘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나는 외쳤다. “학생들 의자 바로 세워요. 남을 의식할 줄 알아야지.” 그러나 불과 얼마 후 의자는 다시 뒤로 젖혀졌다. 정말 속이 불편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꼬박 천안까지 그대로 갔다.

차가 도착해 하차할 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요즘 젊은 애들이 다 그래요. 뒷자리 손님은 의식도 하지 않고 이럴 수가 있을까요?” 라고 옆 손님에게 말을 던졌다. “요즘 세월이 다 그렇다. 젊은이들이 남을 배려한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습니다”하고 말을 받았다. 필자는 “그래도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것은 지적해야지요”라며 다시 말을 건넸다.

어떤 지식이나 배움을 통한 가시적 성과는 있을지 몰라도 인생의 본질적 성숙이란 보기 힘든 시기에 살고 있다. 더욱이 한국교회도 본질이 아닌 허상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 위주로 마치 키만 자란 미숙아와 같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제 무엇인가 성장과 성숙이 조화된 새로운 가치관을 찾을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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