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에 담아낸 하나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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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에 담아낸 하나님 사랑
  • 이현주
  • 승인 2005.01.12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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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도자기 사장 정화영집사의 신앙과 비전
    거창도자기 정화영집사와 오순자집사. @기독교연합신문

 
가라앉은 경기가 좀처럼 살아날줄 모르고 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까지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사업의 성공을 기원하는 크리스천 기업들에게도 불황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모두들 하늘에 대고 원망의 소리를 늘어놓는 이 때 오히려 불황도 감사함으로 이겨내는 한 사업가가 있다.

거창도자기 정화영사장(산당교회 집사). 고령토로 도자기를 구워 인체에 무해한 내열냄비를 생산하는 정사장은 지금이 IMF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도자기 업계가 8~90% 공장 가동을 멈출 정도로 경기가 안좋다고들 합니다. 우리에게도 또한번의 시련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그저 지혜를 간구할 뿐입니다.”

정화영사장은 그의 나이 18살에 부모님을 잃고 4명의 동생을 거느리는 소년가장이 됐다. 독실한 신앙을 가졌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아버지는 종교생활을 핍박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할 어린 동생들은 따뜻한 밥 한 공기 얻어 먹지 못했다. 중풍에 걸린 어머니를 고치기 위해 정화영사장은 백방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모든 것은 무력하기만 했다. 몇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어린 정사장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아직 할 일이 많은 저에게 이런 힘든 시련을 주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그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이유가 됐고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기까지 그는 하나님을 외면했다.

직장생활에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엄마의 역할까지 그가 1인 2역을 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결혼하는 것. 가정을 돌봐줄 아내를 찾아 동생들을 맡기는 것이 한시라도 급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순자집사(사진 우측)를 아내로 맞아 새 인생을 시작했다.

“결혼 후 조금은 막막하더군요.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막내부터 4명의 동생들이 남편이 벌어오는 생활비에 의존해서 학업과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어요. 주위에서 모두들 힘들거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때는 모두들 그렇게 사는줄만 알았습니다. 힘들다는 생각, 왜 내가 이런 어려운 결혼생활을 해야하나 하는 원망, 이런 것 한번 해본적이 없어요.”

참으로 무던한 아내 오집사는 남편을 내조하며 시동생들을 키워가며 가정을 충실히 돌봤다.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그를 지탱한 힘은 믿음이었고 새벽마다 기도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을 의지했다.

성실한 남편은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한국도자기 엔지니어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다. 원료배합, 디자인, 도자기 굽기 등 20년을 일하면서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 모든 기술을 익혔다.

‘정화영’. 이 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도자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92년부터 기술지도를 하던 그는 97년 경북 고령에서 홍익아트세라믹이라는 도자기 회사를 설립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뛰어든 사업. 그러나 97년 갑작스런 IMF한파는 그를 위기로 몰고갔다.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모두들 그랬죠. 작은 회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어려운 시기에 우리 회사는 오히려 호재를 만났습니다. 청동이나 황동으로 만든 구이판에서 발암물질이 배출된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사용자제를 권유했죠. 이후 안전성을 인정받은 도자기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회사는 상승세로 돌아섰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렵게 결심한 사업에서 그는 첫 터전을 하나님께 구했다. 아내와 고령토로 유명한 경북을 돌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교회를 찾아 들어갔다. 그곳이 지금 그들이 출석하는 산당교회다. 무조건 들어가 예배를 드린 후 장로님을 찾았다. 그렇게 알게 된 장로님은 정집사 내외의 이야기를 듣고 공장부지를 알선하고 성도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지금 산당교회 식구 80%는 그의 사업장에서 같이 일하는 가족들이다. 무작정 찾아들어간 교회가 지금 그의 사업에 밑거름이 되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정사장은 거창에 폐교를 구입했다. 네덜란드에서 엽장석을 수입, 온도변화에 끄떡없는 도자기를 만들어 내는 등 전제품을 특허 출시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정사장에게 목표를 물었다. 사업에 대한 비전이 있을 법도 한데 그의 대답은 예상을 비켜갔다.

“고령공장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목표에요. 교회에 나오지 않는 공장 식구를 전도하고 있는데 쉽진 않네요. 모든 직원이 하나님을 믿을 때 목사님을 모시고 매주 예배를 드리는 온전한 믿음의 기업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거창에 폐교를 구입한 것도 선교적 비전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부산의 어느 교회가 폐교를 수련시설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도시교회들에게 수련회 장소를 제공하는 것을 비전으로 세우고 학교 시설을 보수했다.

그가 덧붙인 또 한가지 소망은 사업이 잘되면 60세가 넘은 노인사원을 더 많이 채용할 수 있다는 것. 지금도 대부분의 직원이 60이 넘은 고령자들이다. 도자기공장이라는 특성상 노인들도 얼마든지 노동을 할 수 있다. 일거리가 없는 농촌에서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큼 감사한 일도 없다.

“불편한 점도 없진 않죠. 모두들 교회 식군데 저보다 직분도 높으신 분들이세요. 교회에 가면 성도들이 “사장님, “사장님” 하는데 민망하죠. 그래서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나옵니다.”

주일에는 조용한 성도일지 모르지만 정화영사장은 동네 궂은 일에 앞장서는 열성성도이기도 하다. 성도의 장례식에는 열 일을 제쳐두고 상여를 맨다. 나서는 것을 싫어하지만 뒤에서 조용히 섬김과 봉사를 실천한다. 그래서 그는 나이많은 공장 직원이자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사장이다.

매일 새벽, 예배당을 찾아 기도로 하루를 여는 오순자 사모. 남편 정화영집사는 아내의 기도가 오늘의 자신를 있게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2년째 계속되는 불황속에서도 부부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차피 이 일은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하나님의 처분대로 맡길 뿐이죠. 고난과 시련이 있으면 평탄한 시간도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큰 목표를 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합니다. 여기까지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는 정화영사장. 불경기와 상관없이 노력하고 기도하는 그의 미래는 뜨거운 불가마에서 고운 자태를 드러내는 도자기처럼 인내의 시간을 지나 하나님의 계획대로 완성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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