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의 구약 읽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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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수의 구약 읽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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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1.0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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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 -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
 

                                                                                               김종수 교수/강남대 구약학

이제까지 아브라함은 아브람으로, 사라는 사래로 불려지다가 창세기 17장에 이르러 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로 명명된다. 고대 사회에서의 이름은 인격 자체를 의미했으며 그 사람의 운명과 직결됐다. 그래서 남을 저주하고자 할 때 토기나 나무 등에 상대방의 이름을 쓰고 저주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도 예전부터 성명학(姓名學)이 유행했으며 이름이 나쁘다고 생각될 때, 다 자란 후에도 개명한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개명된 것은 그가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그의 이름을 개명하게 했으며, ‘열국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사래도 사라로 바뀌어야 했다.

아브라함은 이제 평범한 부족장이 아닌 열국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한다. 그는 큰 인물이 되어 온 세상을 구원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 첫번째 시도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흥정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이 죄악으로 가득 찬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려고 하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항의한다(창 18:22~33). “하나님, 하나님이 과연 의로운 분이신 가요? 소돔과 고모라를 의인과 함께 멸하시렵니까? 의인이 단 한사람이라도 그 안에 있다면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신다는 것은 부당합니다.”

아브라함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하나님은 주춤하시고 아브라함은 흥정을 시작한다. “하나님 그 성중에 의인 50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인 50인은 하나님의 양보로 계속 내려가서 10인까지 이른다. 의인 10인이 없어 그 성은 멸망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비록 의인 10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만, 여기서 아브라함의 모습은 그야말로 선지자(先知者)의 모습이요 의인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정의를 정면에서 비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는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할 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바꿀 수 있는 의로운 항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아브라함은 예언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진정한 권위는 정의를 실현하고 사랑을 실천할 때 지켜진다. 하나님의 의는 순종할 때보다는 때로는 부조리와 부정의에 항의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은 태어난다(창 21:1~3). 이 일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경사요, 하갈과 이스마엘에게는 고난의 출발점이었다.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으로 여기고,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기로 작정한다. 마음 약한 아브라함은 사라의 간청에 못 이겨 하갈에게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주어 광야로 내보낸다.

광야에서 물과 먹을 것이 떨어져 탄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 이스마엘을 크게 축복하고 그들에게 생수를 주신다(창 21:9-21). 아브라함에 주어졌던 축복은 이스마엘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고 그는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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