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성도의 장례식을 집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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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성도의 장례식을 집례하며
  • 이병후 목사(가양제일교회)
  • 승인 2024.04.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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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후 목사 / 가양제일교회
이병후 목사 / 가양제일교회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이런 때는 영락없이 성도의 가정에 긴급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집사님이 노환으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랜 시간 함께 신앙생활하고 예배드리시던 집사님이신데, 노환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장례를 부탁한다는 가족의 전화였다.

올들어 벌써 장례식을 6번째 집례한다. 은퇴하신 장로님도, 안수집사님도,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 안식하셨다. 우리 교회는 구도심에 자리 잡은 교회로서 이제는 어르신들이 많은 고령 교회가 되었다. 성도들을 천국으로 떠나보내면서 한편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가족들의 슬픔이나 아쉬움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담임목사로서 그들이 믿음으로 헌신과 수고의 삶을 살아온 모습을 생각할 때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장례예배는 가족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에 최선을 다해 집례한다. 불신 가족들이라도 대부분 예의를 갖추고 참여하므로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다해 설교한다.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죽음과 부활에 대한 전도할 가장 귀한 기회가 장례예식이다.

목회를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많이 변했다. 목회 초기에는 성도의 장례 때 장례 전체를 주관해야 했다. 부목사 시절에는 담임목사님을 보좌하며 직접 염습을 하고 입관도 맡았다.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총동원 되어 밤늦게까지 상여를 준비하고 꽃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매우 단순해졌다. 기독교 장례예배도 병원 장례식장에서 빈소를 마련하고 임종, 입관, 발인예배를 드린다. 전문 상조회가 생겨나면서 장례문화가 간소화된 것이다. 또한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화도 있었다. 따라서 이제는 장지에서 하관예배를 대신하여 대부분 화장예배를 드린다. 

매장의 경우에는 좀 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관을 운구하면서 산소까지 따라가서 하관을 하지만 화장은 이동이 짧고 곧바로 화구에 들어가므로 너무 허망하고 허무함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 가족들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기도 한다.

장례를 집례할 때 안타까운 점이 있다. 성도들이 다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장례 집례 때 사람들이 너무 적어서 민망할 때도 많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다 보니 성도들이 모든 분들의 장례를 조문하는 것이 부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성도 간에 경조사에 참여가 적거나 없던 것이 가장 큰 원인 같다. 상조는 품앗이 개념이 크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받아야 주는 품앗이를 넘어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성도의 천국 길을 환송하는 조건 없는 섬김을 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고아나 과부나 객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예수의 이름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상급을 약속했다.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고 웃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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