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최초의 여성병원 ‘광혜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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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최초의 여성병원 ‘광혜여원’
  • 김태현 기자
  • 승인 2024.04.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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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유산을 찾아서 (9)// ‘평양의 어머니’ 여성과 아동을 돌보다
평양에 설립돼 환자들을 돌봤던 기홀병원과 광혜여원, 훗날 두 병원은 합병해 평양연합기독병원이 된다.
평양에 설립돼 환자들을 돌봤던 기홀병원과 광혜여원, 훗날 두 병원은 합병해 평양연합기독병원이 된다.

로제타 홀은 서울 보구녀관에서의 의료 선교와 교육 사역에 안주하지 않았다. 서울 외에도 평양에 여성병원인 ‘광혜여원’을 설립하며 여성과 아이들에게 헌신적으로 의술을 베풀었다. 로제타 홀은 약 20 동안의 사역으로 ‘평양의 어머니’라고 불릴 정도였다.

로제타 홀의 20년 평양 사역은 대부분이 광혜여원에서 이루어졌다. 1898년 로제타 홀은 여성병원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해외여선교부 건물 한 켠에 광혜여원을 설립했다. 광혜여원이라는 이름은 평양 감찰사가 이름을 지어줬는데 로제타 홀이 그의 아내를 치료했기 때문이다. 광혜여원은 ‘앞으로 많은 여성들이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평양 감찰사의 바람에 부응하듯 첫해 2,167건 진료를 시작으로 매년 진료 건수가 증가해 1903년에는 병원을 증축해야 할 정도였다. 1906년 화재로 인해 재건축을 진행했고 1908년부터 새롭게 건축된 더 넓은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하자 4,675건의 진료를 했다.

광혜여원은 매년 평균 3,855건의 진료를 했고 평양과 평양 인근 여성들이 500~900리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광혜여원에 방문했다.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라면 내과, 외과, 안과, 피부질환, 청각질환, 부인과, 치과, 이비인후과 등 진료과목을 가리지 않고 치료했다.

로제타 홀이 안식년을 끝내고 다시 평양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딸을 기려 어린이 병동도 건설했다. 광혜여원은 최초에 부인과를 중심으로 진료활동을 했는데 어린이 병동이 건설되며 아동에 대한 진료까지 힘썼다.

특히 광혜여원은 평양의 소아 척추 환자 치료와 예방에도 크게 기여했다. 로제타 홀은 평양의 아이들이 서울의 아이들보다 척추만곡(脊椎彎曲)질환을 많이 앓는다는 것을 인지했다. 생활 양식을 관찰한 끝에 서울과 평양의 육아 방식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서울에서는 아이들을 100일이 지나야 업고 다니는 데 비해, 평양에서는 출생한 지 10일 만에 업고 다니면서 척추에 무리를 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척추만곡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소아용 석고 재킷을 만들어 치료 효과를 보았다.

광혜여원은 구휼·자선병원으로도 유명했다. 최대한 많은 여성과 아동을 치료하기 위해 무료로 진료하거나 아주 조금의 치료비만 받았기 때문이다.

1923년 광혜여원은 경영악화와 남녀유별관념의 희석으로 인해 윌리엄 홀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 탄생한 기홀병원과 합병해

 

이 된다.

비록 광혜여원이라는 이름은 없어졌지만 평양연합기독병원의 여성과로서 평양 여성들의 삶은 계속해서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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