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아동도 ‘안전한 세상’에서 자라날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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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아동도 ‘안전한 세상’에서 자라날 ‘권리’가 있습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4.04.02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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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죽음에서 생명으로 ⑧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학대피해아동’ (상)

매년 ‘아동학대’ 꾸준히 증가…가해자의 약 83%는 ‘부모’
훈육에 대한 그릇된 인식 문제 “자녀는 ‘소유물’ 아니야”
생명 위협하는 끔찍한 폐해, 아동의 ‘기본 권리’ 보호해야
‘종합적 대책’ 마련 위해 교계 비롯한 범사회적 노력 필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정부는 사회 각계의 협력을 강조했다. 아동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교회도 동참할 사명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랑을 느껴야 할 가정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가까스로 살아남은 아이들이 있다. 잔혹하고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돼 지옥 같은 하루를 버티는 이들은 죄송해요혹은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먼저 배운다. 바로 가정 내 아동학대의 피해자, 아니 생존자들의 이야기다.

학대의 이유는 사소했다. 아이가 잠투정을 한다는 이유, 밥을 잘 안 먹는다는 이유였다. 때로는 이런 황당한 이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절박한 상황과 신호를 알아챈 어른은 없었다. 결말은 참혹했다. 짧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절규하던 아이는 결국 싸늘한 주검이 돼서야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극적이게도 국민적 공분을 산 아동학대 사건은 매년 끝없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고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가는 아동학대의 예방과 근절을 위해, 정부는 사회 각계의 협력을 통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부족한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교회도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가정내 학대 제일 심각
훈육이란 명목아래 자행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에 따르면,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해 아동의 건강과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하는 각종 폭력 행위를 일컫는다. 아동복지법이 규정하는 아동학대의 유형으로는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학대 유기 방임 등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근거해 아동학대를 범죄로 규정한다.

그러나 아동학대는 매년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 아동학대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당해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46,103건 중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27,971건이었다. 2021년 대비 14.5% 감소했지만 2020년보다 9.1% 올랐다. 복지부는 예외적으로 2021년을 제외하면, 최근 5년간 아동학대 신고 건은 증가 추세라고 설명했다.

믿기 힘든 대목은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돼야 할 가정에서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제일 많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보고서는 아동학대 행위자 중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82.7%(23,119)1위라고 밝혔다. 아동학대 장소도 가정이 81.3%(22,738)1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주요 아동돌봄기관인 학교(7.6%) 어린이집(4.6%) 유치원(0.5%)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돌봄기관 내 아동학대는 조기에 발견될 확률이 큰 반면 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는 아주 오랫동안 은밀하게 지속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특히 아동학대의 주요 가해자가 부모로 지목된 가운데, 자녀양육 과정에서 훈육이란 명목 아래 자행하는 체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서울장신대 사회복지학과 박은미 교수는 체벌의 근거로 악용돼온 민법 제915조 자녀 징계권 조항이 2021년 삭제됐지만, 여전히 상당수 부모들은 자녀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현장에서 아동학대 관련 상담을 해보면, 대부분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잘못해서 훈육했다고 말한다고 실태를 전했다.

그는 극단적인 학대를 했음에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한 훈육이라 믿는 부모들이 많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더 안타까운 일은 기독교 가정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올바른 부모교육과 더불어 체벌에 관대한 문화를 바로잡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꼬집었다.

빙산의 일각, 아동학대
목숨앗아가는 범죄


아동학대는 소위 암수범죄로 불린다. 사건이 발생했지만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아 공식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라는 뜻. , 언론보도 등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는 아동학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란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가정 내 아동학대는 은폐가 쉬울뿐더러 피해자의 연령 또한 36개월 미만의 영유아에 집중돼 발견율이 고작 3%가량에 불과한 까닭이다.

작고 연약한 아동은 스스로 보호받을 권리를 주장하거나 방어할 힘이 없기 때문에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해마다 40여명의 아동이 학대로 고귀한 생명을 잃고 있으며, 생존할지라도 성인이 될 때까지 장기간 극심한 후유증을 앓는다. 그리고 이 부정적 영향은 개인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대된다.

장로회신학대 기독교와문화 이지현 조교수는 2022년 논문 <아동학대 예방 및 해결을 위한 교회의 역할에 관한 연구>에서 학대가 입증돼 분리 및 치료를 받은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다시 원가정으로 복귀함으로써 재학대위험에 노출되고 있다이는 성인기 우울증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부모와의 잘못된 애착 형성은 영성발달은 물론 사회적 관계정립에도 치명적이다. 그는 아동기 학대 경험은 하나님에 대한 표상을 부정적으로 왜곡시키고 믿음의 차이를 만든다무엇보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폭력의 대물림을 초래할 수 있다. 성장과정에서 반사회적·공격적 행동을 표출하는 이들은 자라서 범죄에 가담할 위험도 높아진다고 부연했다.

아동은 권리의 주체자
공동 대응나선 교계


아동도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날 권리를 지닌다.” 1989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 등 네 가지 권리를 옹호한다. 그리고 가족과 국가는 아동의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외친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아동을 지켜낼 책임 당사자란 것이다.

이 말은 아이들이 단순히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한다는 시혜적의미를 넘어서, 아동도 당연한 인권과 권리를 지닌 주체자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방)교육의 부재 인프라 및 인력 부족 대중의 무관심 학대피해아동에 대한 법적 보호 미비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 복합적인 원인들로 아동학대는 아직도 뿌리 뽑히지 못하고 있다.

아동학대의 예방과 근절을 위한 종합적 대책이 요구되는 가운데, 정부는 시스템 및 제도 보완을 위해 사회 전 구성원의 동참을 호소한다. 2020년 일명 정인이 사건으로 세간이 들끓었을 당시 정부는 종교계·교육계·보육계·의료계 등 40여개 기관과 단체와 함께 아동학대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적 공동 실천 선언문을 발표하며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교계에서도 연약한 아이들의 아픔에 통감하며 든든한 울타리를 자처하는 시도들이 포착된다. 교회는 풍부한 인프라와 인적 자원을 동원해 학대피해아동의 돌봄과 치료, 그리고 가정회복 프로그램이나 부모교육을 실시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 엔지오를 중심으로는 관심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거나 관련 정책과 제도에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힘쓰고 있다. 아직 과제도 남았지만, 국가의 손길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빈틈을 메우려는 교계의 노력이 오늘도 난간에 매달려 우는 아이들을 구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공적 책임을 이야기한 고신대 아동복지학과 주석진 교수는 사회 현안에 관심을 두고 약자를 보호하는 일은 교회의 사명이자 책무다.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핵심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어린이는 하나님이 물려주신 기업이자 사랑과 환대의 대상임을 깨달아야 한다며 교단과 성도 개인 차원에서 도울 역할이 정말 많다. 교회가 이 사역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면,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는 효과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 등 네 가지 권리를 옹호한다. 그리고 “가족과 국가는 아동의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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