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에큐메니칼 없는 에큐메니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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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에큐메니칼 없는 에큐메니칼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3.2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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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속에 ‘에큐메니칼’이 없다. 이 무슨 궤변인가 싶겠지만 작금의 상황이 딱 그런 꼴이다. 에큐메니칼이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의미한다. 올해 100주년을 맞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자타공인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즘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단체다. 그런데 바로 그 NCCK가 에큐메니칼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찌 된 사연일까.

사건의 시작은 지난 1월 2024년 부활절연합예배 장소가 명성교회로 결정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해는 자체 부활절 새벽예배를 드리지 않기로 결정한 NCCK는 다른 방안을 강구하는 동시에 부활절연합예배에 회원교단이 적극 참여하기로 결의했다. 연합예배 준비의 구심점인 교단장회의에 실무자가 참석해 NCCK의 결의와 연합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소식을 접한 NCCK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목회지 세습’ 논란의 중심에 있는 명성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어떻게 NCCK가 동참할 수 있느냐는 이유였다. 실행위원들과 청년위원들이 줄지어 사표를 던졌고 지역 NCC와 프로그램 위원회에서는 강경한 성명이 쏟아졌다.

상술했듯 올해는 NCCK가 설립 1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다. 한국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 지도 140주년을 맞이한다. 한 세기가 넘는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셀 수 없는 풍파가 있었다고 하나, 가장 가슴 아픈 치부를 꼽자면 단연 ‘분열’이다. 갈라진 교회는 서로에게 ‘진리’라는 이름표로 포장한 총구를 겨누고는 갈등과 반목을 지속해왔다. 부활절연합예배는 한국교회가 교파와 이념을 초월해 하나로 뭉치는 몇 안 되는 현장이다. 하지만 그 숭고한 연합의 정신조차 ‘명성교회’라는 에큐메니칼의 역린 앞에서는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지난 22일 임시 실행위에 참석한 한 총대는 NCCK 자체 부활절 새벽예배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NCCK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총선에서 상대 당만 후보를 내고 우리는 후보를 내지 않는 꼴”이라고 발언했다. 보수 교단을 ‘맞서 싸워 이겨야 할 적’으로 상정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표현이다. ‘연합과 일치’를 표방한 ‘에큐메니칼’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특정 이슈에 지나치게 매몰된 덕에 에큐메니칼의 본질, 그리고 하나가 되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마저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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