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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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4.03.1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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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내가 만들어낸 하나님은 아닌가?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 경험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찾다가 하나님을 만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불임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녀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만나기도 한다. 나름의 간증이 우리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간증은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신가?

신학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으로 시작해야 하는가? 조직신학의 용어를 빌린다면 신론을 먼저 취급할 것인가 아니면 성경론을 먼저 다루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철학의 용어와 관련하여 표현한다면 형이상학과 인식론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이다. 지식의 방법에 대한 문제가 정확히 해결되지 못하면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도 바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식의 방법론은 대체적으로 우리의 지식의 내용이 되는 그 대상의 성격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직신학에서는 신학서론의 하나로 성경에 대해 다루고 신론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일반화된 관행이 자리 잡은 것은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우리가 잘 아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4년)은 전체 33장 가운데 맨 앞 1장에서 성경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년)은 우리의 죄와 비참함에 대하여 다루면서 복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고 전체 129개의 문답 가운데 별도로 성경을 다루고 있는 항목은 없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1권이 신론인데 그 가운데 성경에 대해 다루고 있는 내용이 등장한다.

성경을 신학 토론의 맨 앞머리에 위치시키는 관행은 아일랜드 신조(Irish Articles of Religion, 1615년)가 그 효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아일랜드 신조의 주요 작성자는 제임스 엇셔(James Ussher, 1581~1656)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 대해서 논의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방법은 많은 전통적인 신학자들에 의해서 사용되어 왔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인간의 영혼 위에 쓰인 하나의 지식이 아니라 다른 모든 지식들의 기초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대표적으로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존재는 어떠한 외부적인 권위에 의존함이 없이 순수한 이성에 의해서 증명되어 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난 후에도 생각할 수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는 그렇게 증명된 하나님이 바로 성경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증할 수 없다. 그래서 아퀴나스가 5가지 귀납적인 방법을 통하여 입증한 하나님은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의 존재가 증명되어진 신과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서로 같은 존재임을 증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가 필요하지 않은가? 밀라드 에릭슨은 “아마도 아퀴나스는 한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5가지의 증명들을 제출한 것이 아니고 그보다는 5가지의 다른 신들-창조자, 설계자, 동인자(Mover) 등-의 존재들을 입증하기 위한 한 종류의 증거들을 제시한 것 같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특별계시인 성경으로부터 시작하는 방법을 따라가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을 채택하는 사람들은 성경 또는 그리스도 사건 밖에서는 어떠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도 소유할 수 없음을 종종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칼 바르트는 어떠한 형태의 자연신학도 거부했다. 그는 그의 주저 <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에서 신학서론을 쓰고 난 후에 신론에서부터 쓰지 않고 성경(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먼저 기술해 나간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냐에 먼저 집중되었고 그리고 나서 그 계시의 빛 아래서 알려진 하나님에 대해서 초점이 맞춰진다.

신학의 출발점을 성경으로 생각하는 접근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떻게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여길 수 있게 되었는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성경은 초자연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여러 인간 저자들이 제출한 종교적인 의견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에릭슨은 신학의 출발점을 하나님이나 성경 중의 어느 하나에서 찾는 대신에 우리는 그 둘 모두에게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에릭슨이 제안하는 신학의 출발점이다. 성경관을 비롯한 서론에 대한 토론을 뒤로 하고 신론으로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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