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죽음으로 존재가 드러나는 아이들, “아동의 생명권 보호해야”
상태바
[연중기획]죽음으로 존재가 드러나는 아이들, “아동의 생명권 보호해야”
  • 정하라 기자
  • 승인 2024.03.05 2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⑤지켜야 할 생명 ‘그림자 아동’

‘출산보호제’로 음지 출산의 사각지대 막아야
남성의 책임 간과해선 안 돼…‘부성애법’ 필요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이름도 없이 사라진 생명이 있다.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는 이른바 ‘그림자 아동’이 바로 그들이다. 결국 이들은 부모의 심각한 학대나 방치로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그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태어날 아이들 못지않게 지켜야 할 생명은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그림자가 어둠 속에 자취를 감추는 것처럼, 세상의 어둠 속에 태어난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히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없는 ‘그림자 아동’의 권리 보호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지난해 6월, 경기도 수원의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사체 2구가 발견된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조사 결과 아이의 엄마가 2018년과 2019년 각각 출산한 태어난 두 아기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의 정기감사에서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사례’를 파악하고, 이뤄진 경찰 현장 조사에서 발각된 것이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사라져버린, ‘그림자 아동’ 문제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미등록 출생 아동의 행방을 찾는 움직임이 가속화됐다. 지난해 정부의 감사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는 2015~2022년 사이 미등록 출생 아동이 총 2,123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중 무려 275명(13.0%)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큰 충격을 준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최근 2010~2014년 사이에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9,603명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시행했다. 경찰의 수사 결과 이들 중 5%에 가까운 469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2022년까지 출생했지만, 신고가 되지 않은 ‘그림자 아동’ 1만1,726명 중 744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더욱이 의료기록이 없는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자 아동’ 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오는 7월부터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시행된다. 무엇보다 생명을 지키기로 결심한 미혼모들이 아이를 낳아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안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림자 아동’ 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오는 7월부터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시행된다. 무엇보다 생명을 지키기로 결심한 미혼모들이 아이를 낳아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안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출생통보제’ 올해 시행…사각지대 우려도

‘그림자 아동’ 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 권리를 보장하는 ‘출생통보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어떤 공적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아 가정에서 아동이 방치되거나 학대‧유기 등의 각종 범죄에 노출돼도 파악이 어려웠다.

지난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올해 7월부터 ‘출생통보제’가 전격 시행된다. ‘출생통보제’는 아동이 병원에서 태어나면 의료기관에서 직접 출생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것이다. 현재 전체 분만 중 99.6% 이상은 의료기관에서 이뤄지고 있어 ‘출생통보제’를 도입해 출생신고 누락으로 인한 아동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출생신고의 의무는 오로지 부모의 몫이다. 법적으로 ‘1개월 이내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신고하지 않아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며, 과태료는 고작 5만원에 불과하다. 법이 통과된 이후 지자체는 한 달 이내 부모의 출생신고가 없어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출생신고를 회피하려는 산모나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하는 미혼모들의 탈법적 출산을 이끌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대표:이종락 목사)에서는 정부의 그림자 아동 ‘전수조사’가 시작된 지난 7월부터 12월까지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의 수(24명)가 지난해(51명)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종락 목사는 “정부의 전수조사 직후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동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여성들이 경찰의 조사에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본다”며, “현재는 수치가 조금씩 이전과 비슷해지고 있지만, 출생통보제가 본격 시행되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우려하에 보완책으로 도입된 것이 ‘보호출산제’다.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위기 임산부가 익명으로 출산해 출생신고를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출생통보제와 함께 시행된다.

임산부는 아이가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이후 최소 일주일(7일)간 아동을 직접 양육하기 위한 숙려기간을 거쳐야 하며, 이 기간이 지난 후에는 지자체에 아동을 인도할 수 있다. 태어난 아동은 성인이 된 후에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 서류의 공개를 청구할 수 있지만, 생모의 동의가 없다면 인적 사항을 제공받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보호출산제가 영아가 친부모에 대해 ‘알권리’를 침해하고, 임산부가 양육을 쉽게 포기하게 할 수 있다는 반대의 의견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엄마와 아기가 위험한 순간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선택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모의 자녀 출생등록을 유도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보호출산제’를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UN) 아동권리협약 제7조는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 시부터 이름을 갖고, 국적을 취득하며, 가능한 한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2011년 부모의 조건이나 출생 여건과 관계없는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국에 권고하기도 했다. 한국은 이제야 이 권고 이행의 첫발을 뗐다는 평가다.

‘미혼모 자립 돕는 사회구조’가 우선

‘그림자 아동’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 속에 전 국민은 크게 분노했지만, 영아 유기‧살해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먼저 파악해보아야 한다. 열악한 현실 속에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미혼모들의 현주소를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김성희 교수(경찰대)가 2021년 한국교정학회지에 게재한 <한국 영아살해 고찰> 논문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영아살해죄로 기소된 사건의 판결문 46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는 모두 생물학적 친모(46명)였으며, 46명 중 45명이 미혼이었다. 영아 살해의 동기로는 임신 및 출산 사실의 은폐 목적이 40건(87%)으로 가장 많았고, 생활고로 양육이 불가하다는 판단은 34건(73.9%)으로 확인됐다. 또 가해자의 연령은 판결문에 공개된 이들 중 8명이 미성년자였고, 3명은 20대 초반이었다.

또 아이의 친부가 가해자의 임신 사실을 인지하는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42건)이었고 인지한 경우는 4건에 불과했다. 이는 어린 나이에 경제적‧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홀로 양육의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영아 살해나 유기 등의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혼모자 공동생활가정 ‘꿈나무’ 박미자 원장은 “미혼모가 임신한 경우 아기 아빠뿐이 아니라 원가족에게 소외되고 인정받지 못한 채 시설에 입소한 사례도 많다. 이 경우 아이를 키우면서도 불안해하고 시설에 입소해도 자살을 시도하는 안타까운 케이스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혼 여성의 임신과 출산, 양육 전반에 대한 지원과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의 제도적 노력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는 것.

여러 이유를 불문하고 생명을 지키기로 결심한 미혼모들이, 아이를 낳아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안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미혼모의 경우 아기를 낳기 전 아빠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고 홀로 양육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심적 압박감에 시달린다.

출산을 결정한 미혼모는 자녀의 출생 이후 두 가지 큰 갈림길에서 선다. 입양특례법상 미혼모가 출산하게 되면 7일(일주일)의 숙려기간을 거쳐 자신이 낳은 아이를 계속 키울 것인지, 입양을 보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양육을 선택했다면, 그 순간부터 엄마와 아기가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줄 필요도 있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모든 문제가 임신한 여성에게만 법적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출산통보제’와 ‘보호출산제’에서 아이의 친부인 남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보호출산제와 함께 ‘부성애법’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종락 목사는 “교제중이던 여성이 임신하면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쳐 버리는 남성들이 많다. 그렇기에 여성이 홀로 출산과 양육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이 남성을 추적해 DNA 검사를 진행하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소득을 압류하면 남성도 성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기고,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이들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