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만세!” 1919년 3월 1일 민중들의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운동은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일듯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거리마다 자유와 독립을 갈망하는 민중들의 흰옷과 태극기가 나부꼈다. 3.1 운동은 지도자 몇몇이 아닌 거리의 민중들에 의해 활활 타오른 풀뿌리 운동이자, 폭력 없이 당당하게 주권국가로서 권리를 요구했던 저항운동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당시 일제와 같은 압제자는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문화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는 2024년, 우리에게 3.1 운동의 저항정신은 그저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 과거의 흔적으로 여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되새겨보자. 우리는 왜 스스로를 ‘프로테스탄트’(저항하는 자)로 정의하는가. 일제 강점기와 같이 눈에 띄는 거악은 찾아보기 힘들지 모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지독하고 악한 세상의 문화가 교묘하게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렇기에 크리스천은 여전히 저항해야 한다. 기독교연합신문은 3.1절을 앞두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시류를 거스르며 저항하는 크리스천들을 만났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를 지키는 것이 곧 크리스천의 사명이라 믿으며 인간의 이익을 내세워 환경을 파괴하는 세태에 저항하는 서미영 권사,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 추구가 곧 선이라고까지 여겨지는 물신주의에 저항해 희년정신으로 공간 임대 기업을 운영하는 정수현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 3.1 정신과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여전히 일상에서 이어가는 이들을 통해 다시금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 미래 생각하면 기후 위기 방관할 수 없었죠”
일상의 환경운동가 서미영 권사
그저 아이들을 바르게 잘 키워보고자 하는 마음밖에 없었다. 입시에 매몰된 세상의 교육에 아이를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길을 찾아보던 끝에 용기를 내어 홈스쿨링에 도전장을 냈다. 신앙을 바탕으로 자녀를 바르게 키워보겠다는 ‘선한 욕심’은 자연스레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서미영 권사(높은뜻하늘교회)와 환경 운동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홈스쿨링을 시작하니 이것저것 공부해야 할 게 많더라고요. 여러 가지를 알아보다 보니 자연히 환경 문제가 눈에 들어왔어요. 어떻게 키울까도 중요한 문제지만 그 전에 아이들을 둘러싼 기후환경이 너무 안 좋아지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란 위기감이 들었죠.”
무엇보다 환경 문제의 당사자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아이들에게 환경은 곧 그들이 숨 쉬며 살아가야 할 미래였다. 그래서 서미영 권사는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과 함께 환경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아이들 역시 본인들의 일이라는 생각에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였다.
다행히 뜻을 같이한 이들이 있었다. 서 권사가 참여했던 지구촌교회 홈스쿨링 커뮤니티의 다른 부모들도 관심을 보내왔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자 자연스레 모임도 결성됐다. 홈스쿨링을 하는 부모들과 또래 아이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환경을 지킬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 고민하며 실천해갔다.
“작은 것부터 시작했어요.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도시락을 싸오던 분들이 계셨고 환경모임을 시작한 이후로는 다들 벤치마킹해서 도시락을 싸왔죠. 이를 시작으로 일회용기보다는 집에서 그릇을 가져와서 나눠 먹는 문화가 정착됐어요. 음식을 할 때도 친환경 농산물과 몸에 좋은 재료에 손이 갔고요. 처음에 전체 모임에서 사용하던 일회용컵도 나중엔 개인 텀블러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해 홈스쿨링은 끝났지만 창조세계를 지키기 위해 함께 고민하며 즐겁게 실천하던 추억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박 2일 자연휴양림 여행을 떠나며 ‘쓰레기 없는 여행’을 기획한 일이다.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고 한계를 직면했기에 오히려 기억 속에는 더 생생하게 남았다.
“시작부터 부딪혔죠. 장 보는 일에서부터 계획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려 장바구니와 통을 들고 갔는데 사장님께서 비닐장갑을 끼고 제품을 담아주시더라고요. 그걸 보고 쓰레기를 하나도 만들지 않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는지도요.”
전등을 일찍 끄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연 조명인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봤다. 물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이들은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전기 사용을 줄이려 평소엔 손에서 떼기 힘들었던 스마트폰도 내려놨다. 대신 그 빈자리를 기타와 노랫소리, 보드게임과 웃음소리로 채웠다. 비록 완벽하진 못했을지라도 환상적이고 인상 깊은 하룻밤이었다.
이제는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센터장:유미호)과 함께 교육 활동과 모임으로 일상의 환경운동가가 된 서미영 권사. 교회에서 환경팀을 꾸려 제로웨이스트 판매대를 만들기도 하고 쓰레기 줍기 이벤트를 여는 등 환경 운동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학교 환경 수업에 강사로 나가기도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우고 돌아온단다.
“아이들의 감수성은 항상 어른들보다 앞서 있는 것 같아요. 이미 아이들은 환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목격해요. 오히려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앞서가는 생각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힘을 보태주셨으면 해요. 환경을 지키는 것은 곧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니까요. 이를 응원하고 도와주는 것이 곧 어른의 역할이자 크리스천의 역할이 아닐까요?”
“희년 정신으로 하나님 나라의 ‘경제적 자유’ 꿈꿉니다”
공유 공간 만드는 정수현 대표
어느새 땅은 곧 권력이 됐다. 실제로 거주하지도 않을 집을 여러 채 보유하는 것이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알짜배기 부동산 정보가 ‘꿀팁’이라며 나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토지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며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자고 외치는 것은 그야말로 비주류다. 하지만 공유 공간 운영 기업 앤스페이스(NSPACE)의 정수현 대표는 희년 정신을 품고 시류에 저항하는 좁은 길을 자청했다.
앤스페이스는 사람들이 머물기 좋은 도시에서 살도록 지원하는 회사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공간 공유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가 꼽힌다. 2030 세대가 즐겨 찾는 스페이스클라우드에서는 공간을 빌려 촬영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일을 하는 것은 물론, 흥겨운 파티까지 열린다. 사회주택 앤스테이블과 1인 기업가들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도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공간’은 악착같이 소유해 자산을 증식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주신 선물이라는 믿음에서다.
“10년 전 창업 단계에서부터 가장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도시의 문턱’이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장사를 잘하던 소상공인들이 내몰리고, 청년들이 빈곤에 허덕이면서도 좋은 일자리가 모인 도시에 비싼 거주비를 내며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그 과정에서 이웃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청년들은 노동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었죠. 이 모든 문제의 근간에는 부동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임을 선언한 레위기 25장의 말씀은 창업과 운영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창조주가 인류를 위해 토지를 선물로 주셨고, 혹 개인의 사정으로 토지를 운영하지 못하더라도 ‘희년’이 되면 소유권이 다시 원 가문에게 돌아간다는 원리는 현대사회에선 상상하기 힘든 혁신적인 개념이었다. 한동대에 재학하던 시절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한 모임’을 통해 ‘희년함께’와 연을 맺게 된 정수현 대표는 회사를 경영하는 지금도 여전히 ‘희년 정신’을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머물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토지, 그리고 부동산 자산은 부의 축적이 목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기본권이라는 생각을 관련 사업을 하면서 더 실감하고 있는 것 같아요. 희년이라는 것이 제가 활동하는 부동산과 공간임대 사업으로 한정해서 해석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의 활동들을 통해 누군가는 묶여 있는 것들이 풀리고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희년의 일부를 경험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3년 전부터는 ‘커먼즈클럽’이라는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서 커먼즈(Commons)란 공동자원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 도시 공간 자원의 공유 가치에 대해 메시지를 공유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전환하는 일을 고민하는 공동체다.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사회주택 ‘앤스테이블’은 공유 공간 전환의 좋은 예로 지목된다. 민관협력으로 건물 펀드를 개발해 주택에서 나오는 이익을 줄이고 임대료를 낮춰 시세의 80%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요즘 제 주변의 20~40대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주제가 ‘경제적 자유’에요. 경제적 자유만 확보되면 고된 노동도 좀 적당히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 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으시다는 거죠. 특히 젊은 세대는 열심히 일해도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는 것보다 못한 삶이라는 생각에 자산 확보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시대에 어떤 희년을 꿈꿔야 하는가 질문하고 싶어요.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크리스천 기업인으로의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로소득으로 어쩌다 벼락부자가 되는 0.1%도 안되는 사람들을 선망하며 목말라하는 99%의 청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경제적 자유’를 경험하게 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