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새해의 소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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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새해의 소명에 대하여”
  • 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 승인 2024.01.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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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
강석찬 목사

“2024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셔요” 인사의 말끝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 첫 주간부터 들려오는 뉴스가 흉흉하기만 하다. 일본에서 7.6 진도의 지진이 발생해서 도시가 통째 서쪽으로 1.3m 밀렸고, 마을이 초토화될 정도로 피해가 극심한데, 하네다 공항에서 착륙하던 비행기가 군 항공기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나 다행히 모든 탑승자는 무사히 탈출하였으나, 우리는 비행기가 불길에 휩싸여 앙상한 뼈대만 남게된 장면을 생생하게 뉴스로 보았다. 일본의 지진 소식은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 당장 쓰나미가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동해를 덮칠 것 같은 두려움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새해 벽두에 덕담(德談)을 나누고, 한 해 소망을 전하는 뉴스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야당 대표가 흉기로 테러 당한 사건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하게 되었다. 정치권이야 여진(餘震)이나 여파(餘波)를 계산하느라 복잡하겠지만, 국민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지고 갈수록 대담해지는 폭력에 대하여 불안해한다.

때맞추어 북한의 김정은은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을 준비하라”하며, 남북 관계가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관계, 교전 중인 관계로 고착되었다고, 핵 전술적 공격도 불사할 태세임을 선언했다. 핵무기 사용으로 위협하면서 50년 넘은 김일성의 고려연방제를 폐기하는 절차를 밟으면서, 남북 사이의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새해가 되었다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면서 기대했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멈출 징조는 보이질 않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가자지구 전쟁도 아랍 국가들이 참전할 징조가 나타나면서 확전(擴戰)될 것 같아서 오히려 걱정만 늘어난다.

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일까? 2020년부터 교수신문에서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찾아보았다. 2020년에는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상대는 틀리다’ 곧 ‘내로남불’이었다. 2021년은 ‘묘서동처’(猫鼠同處), ‘고양이와 쥐가 같이 있다’ 곧 도둑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라 했다. 2022년은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였고, 2023년은 ‘견리망의’(見利忘義), ‘눈앞의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잊는다’라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부정적인 사자성어만 선정되었다. 세상이 어떻다는 뜻일까? 안중근 의사는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이로움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라”고 했는데, 물욕에 눈이 먼 세상, 이익만 좇는 세태에서, 의로운 사람이 없었다는 비판이 사자성어의 세평(世評)이다. 이런 비판의 말을 듣는 우리의 반응은 어떤가? 우리가 올곧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의로운 사람이 없다’라는 이 말 안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시론자를 포함한 모든 교인이 들어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부끄러워야 한다.

시인 윤동주는 ‘서시’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 했다. 도대체 ‘잎새에 이는 바람’이 어떤 바람이기에, 시인에게 괴로움이 되었을까? 그 바람에서 무엇을 느꼈고, 보았고, 들었기에, 그것이 괴로움이 되었을까? 시인은 결국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 했다. 그렇다. 이런 걸음을 걷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2024년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빛은 어둠이 짙을 때, 할 일이 더 많은 법이다. 소금도 부패한 곳이 많을 때, 더 많이 필요하다. 세상이 악할수록 선한 영향력은 더 크게 작용해야 한다.

예따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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