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앞자리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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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앞자리의 은혜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4.01.1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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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내 버릇 중의 한 가지는 앞자리에 앉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항상 맨 앞에 앉는다. 주일예배 때는 장로석이 따로 있어서 거기 앉지만,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의 경우 맨 첫 줄, 설교자 바로 앞에 앉는다.

언제부터 앞자리에 앉을까? 아마도 대학 다닐 때부터였던 듯하다. 장학금을 받아야만 대학 공부를 할 수 있기에 기를 쓰고 앞자리에 앉아 교수의 강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과목이든 맨 앞에 앉아, 때로는 교수가 열변을 토하면서 튀기는 침도 맞아 가며 집중해 강의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이 강의하다 학생들한테 반문할 때면 앞자리의 내게 하곤 했다. 아마 교수들도 내 얼굴을 남들보다 잘 기억했을 것이다. 앞자리에 앉다 보니, 나는 나대로 교수의 강의를 아주 선명하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듣지, 그것을 필기하였다가 시험을 치르니, 항상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4년 내내 장학 혜택을 받아 졸업할 수 있었다.

4학년 2학기 초에, 결핵성 늑막염으로 며칠간 결석한 적이 있다. 그때 문병 온 학우가 말해 주었다. “복규 씨가 앉던 자리는 우리가 비워 두고 있어요.” 항상 그 자리에 앉다 보니 아예 그 자리는 이복규 자리로 학우들이 기억하여 그렇게 배려했던 모양이었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대학 다닐 때의 그 버릇은 졸업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학회에 참석해도 맨 앞자리는 내 자리다. 대개는 비워두지만, 나는 거기 앉아서 발표자를 응시하며 듣는다. 얼마나 집중해서 듣는지 나는 잘 몰랐는데, 언젠가 단국대에서 열린 한국비교민속학회 학술대회 때, 임재해 교수가 발표를 끝내고 나서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였다.

“그동안 발표 많이 하였지만, 이 선생님만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교수의 강의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몰입해서 들었던 대학 시절의 버릇이, 사회에 나와서도 이어졌고, 발표자한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부작용도 있었다. 교수가 되어, 전체 교직원 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당연히 맨 앞자리에 앉았다. 대부분 뒷자리에 앉아 이따금 조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있다가 뒷자리로 쫓겨났다. 맨 앞자리는 학장, 처장 등 보직교수들 자리라 평교수는 앉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흔히들 말한다. 앞자리는 금자리라고.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앞자리에 앉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다. 언젠가 한동안 극동방송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설교도 참 좋고 특송도 은혜스러운 모임인데도, 자꾸만 뒤에만 앉으려고 들어, 앞자리만 텅 비어 보기 싫었다. 그러자 주최 측에서, 중간 이후부터는 아예 노란 띠를 둘러서, 뒷자리에는 앉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 게 아닌가.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혜스러운 예배나 기도회에서까지 왜 우리가 앞자리에 앉지 않아 이런 조치까지 동원해야 하나 싶었다.

앞에서 말했듯, 우리 교회에서 맨 앞자리는 내 자리다. 설교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보고 느끼며 설교를 듣는 감동은, 아마도 뒷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뮤지컬을 관람할 때 로얄석에 앉아서 보는 것과, 저 위층 C석 싸구려 자리에 앉아서 보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위층의 뒷자리에 앉으면 출연자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예배 때도 마찬가지다.
교회 모든 집회 때 맨 앞자리에 앉다 보니 생기는 단점도 하나 있다. 무슨 일이 있어서 빠질 경우, 금세 교우들이 알아차린다. 왜 오늘 안 왔느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 바로 물어온다. 그러니 여간해서는 빠지기도 어렵다.

고희를 앞둔 지금 생각해 보니, 앞자리에 앉는 버릇은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이다. 돈이 없어 장학금 받으려다 생긴 버릇이지만,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앞자리에 앉아서 누린 복이 아주 크다. 하나님 부르실 때까지 앞자리에 앉아 예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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