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속한 인간이 전적 부패하지 않도록 이끄는 ‘일반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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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속한 인간이 전적 부패하지 않도록 이끄는 ‘일반은총’
  • 박찬호 교수 백석대
  • 승인 2024.01.1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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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_42) 개혁주의신학과 일반은총

중세 시대에 신학은 학문의 여왕이었다. 신학이 학문의 여왕이라고 하는 말에는 다소의 폭력성이 존재한다. 신학 이외의 일반학문을 억압하는 분위기가 존재하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제일철학이었던 신학은 모든 학문에 대한 통제 원리가 된 것이다. 신학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는 인정해야 하겠지만 신학이 다른 학문 연구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억압기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는 1901년 워필드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프린스톤신학교에 스톤강좌(Stone Lecture)에서 전통적인 신학을 강의하지 않고, 기독교가 인간의 개인적인 부분에 국한되는가 아니면 세계관이라는 통합적인 시각으로 확장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다.

카이퍼는 우주론이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 생겼는데 중세 때는 우주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모든 관심이 미래 생활에 대한 어렴풋한 통찰에 쏠렸지만, 칼빈주의는 영적인 것을 놓치지 않고 우주론을 회복시켰다고 말하면서 “칼빈주의는 학문을 제 영역에 회복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이퍼는 우리가 “그리스의 아름다운 우주론적 취미와 영원한 것에 대한 무지,” “중세의 우주적 사물에 대한 무지와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적 사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 즉 중세를 택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카이퍼에게 있어서는 우주적 사물에 대한 지식과 영원한 것에 대한 지식은 배타적인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신학에서는 전체적으로 일반학문에 대해 배타적이다. 예컨대 침례교의 신학적인 성향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개혁주의신학은 일반학문에 대해 배타적일 수 없다. 다음의 카이퍼의 말은 매우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한 사람 아리스토텔레스가 교부 전체보다 우주에 대하여 더 많이 알았으며, 이슬람의 통치하에서 우주론이 유럽의 대성당과 수도원의 학파에서보다 융성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저술의 발견이 불충분하긴 하지만 새로운 연구를 조장하는 첫 번째 자극제였으며, 칼빈주의만이 우리를 계속 십자가에서 창조로 돌아가도록 장려하는 자신의 지배적인 원리와 그에 못지않은 일반은총 교리와 이제 성경이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숨겨 있다고 하는 저 의의 태양에 의하여 조명된 우주의 광대한 영역을 학문에 다시 활짝 열었다고 나는 단언하며 주장한다”(「칼빈주의 강연」, 143).

카이퍼는 벨기에 신앙고백서(1566년)와 같은 칼빈주의 신앙고백이 하나님을 아는 두 방도로 성경과 자연을 말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칼빈은 자연을 단순히 부속되는 항목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성경을 안경에 비유하여 이 안경으로 우리가 자연의 책에 하나님의 손으로 기록하신 (그런데 저주의 결과로 지워지게 되었던) 하나님의 생각을 다시 해독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칼빈주의 해석의 틀 속에서 하나님의 피조 세계로서의 자연을 연구하는 자연 과학자는 헛되고 어리석은 일들을 추구하면서 그 능력을 허비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모든 두려운 우려가 사라져 버렸다. 반대로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관심이 자연과 창조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 결과 몸에 대한 연구는 영혼에 대한 연구와 나란히 존귀의 자리를 회복하게 되었고 이 땅의 인류의 사회적 조직은 하늘에서 완전한 성도의 회중과 마찬가지로 인간 학문의 대상으로서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카이퍼는 칼빈주의와 인본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본주의가 이 세상의 생활을 영원한 것을 대신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모든 칼빈주의자는 인본주의자에 반대했다. 그러나 인본주의자가 세속 생활을 적절히 인정할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만큼, 칼빈주의자는 그의 동맹자였다”(「칼빈주의 강연」, 147).

악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거나 온갖 끔찍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곳에서 개혁주의신학은 우리의 본성이 그다지 심각하게 부패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고 ‘일반은총’(common grace)으로 불꽃이 연기나는 불로 번지지 않도록 막으시는 하나님께 그 덕을 돌린다. 개혁주의신학자에게 있어서는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도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교회뿐 아니라 세상에서 최고의 경영자와 건축자의 걸작을 탐구해야 한다. 세상과 담을 쌓고 학문적인 게토(ghetto)를 형성하는 것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카이퍼에 따르면 개혁주의신학 또는 칼빈주의는 이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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