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사인보다 필요한건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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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사인보다 필요한건 공감이다
  • 고광애 강사
  • 승인 2024.01.16 2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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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를 외치는 나라답게 2018년부터 ‘웰다잉법’이 시행된 지 불과 5년여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소지한 국민이 어느새 160만 명을 넘었단다. 내 경우 동기동창회에서 ‘웰다잉법’을 설명하자 그야말로 특정 종교나 생명 집착에 유난한 친구 몇몇 빼고는 50여명 가까이가 동의했었다. 생전 처음 친구로부터 감사 전화도 다 받았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벼르고만 있던 차에 네 덕에 사전의료의향서를 받고 보니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구나, 고맙다”

이 많은 사람이 유연하게 사전의료의향서에 사인하고 소지했다고 해서 그 모든 사람이 생의 마지막에 불필요한 처치를 받지 않고 임종기를 잘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전의료의향서가 없었음에도 평소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가족에게 미리 알린다면, 원하는 방식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가 없었음에도 사전의료의향서가 지향하는 방식대로 죽음을 죽어 간 내 남편이 있다. 대장간에 식칼이 없다는 말처럼 사전의료의향서 운동을 해오는 내게 나의 남편은 의외로 그게 없었다. 언젠가 내가 남편에게 사전의료의향서 용지를 내놓자 흔쾌히 문서작성을 하다가 휙-하니 사전의료의향서 용지를 내던지면서 외치듯이 말했다. “이 당연한 것을 가지고 뭘 쓰고 말고 해”

남편은 은퇴 후에 건강검진은 물론, 심지어 돋보기도 치웠다. 일생을 치열하게 활자와 함께 하던 그가 한순간에 죽음 앞으로 내던졌다. 몇 년을 다니던 스포츠 센터도, 친지들과의 연도 끊다시피 하고 지냈다. 열심히 하던 운동을 자주 빠지기 시작한 건 그 겨울이 다 가던 무렵이었다. 어느 날, 그는 “걷기가 힘들어졌다”고 고백했다.

“나를 남편을 사랑한다면 안락사 좀 시켜 주라, 맨 날, 그거 연구하러 다녔잖아”

그날 이후, 남편은 마치 급행열차가 달리듯, 홀로 죽음을 향해 달려갔다. 그즈음, 나도 외출을 삼가고 남편을 지켜보던 때였다. 그날은 목사님을 뵙기 위해 구역예배를 한 시간 갔다가 돌아온 후였다. 집안에 들어서자 남편이 실내자전거 옆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고관절 뼈가 으스러졌고, 다행히 시행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후 고통이 가시자, 남편을 살았다는 듯이 좋아했었다. 수술을 마치고 나흘째 되던 날, 의사가 특별히 내 자식들을 찾았다. 그날따라 아이들이 각자 일이 있어 병원에를 못 오겠다고 했던 날이었다. 나는 의사에게 내게 말해도 알아듣는 사람이니 해 보라고 했다. “기도를 뚫고…삽관…어쩌구”하는데 나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런 거 안합니다”고 말하는 나를 바라보는 의사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러자 섬광같이 떠오른 게 내 지갑 속에 끼어 있는 나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였다. 그때부터 병원은 혈압이 내려 가면 올려 주고, 아프다면 진통제를 놔 주고, 무엇보다 배설을 원활히 해주었다. 나는 남편이 몇 달은 이 상태대로 살아가겠거니 했었다. 다음 날은 일요일, 일찍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는데,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예배 마지막 목사님 축도를 보지 못하고 남편의 병실에 왔다. 남편은 이미 말을 못하고 한쪽 눈만 뜨고서도 알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들숨과 날숨이 잦아지듯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날숨만 뱉고 들숨을 쉬지 않았다. 어느새 그것마저 그쳤다. (자신이 원하던 방식의) 좋은 죽음을 맞이한 남편이었다.

어쩌면 사전연명의향서를 등록하는 문서작성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자신이 지향하는 죽음을 가족과 친지, 모두와 평상시에 주고받고 그것이 필요한 것임을 납득시키고 이해하고, 공감시키려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의향서가 없이도 의향서가 지향하는 바대로 죽어 간 내 남편을 보면서 느낀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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