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서 해설] 어둠과 죄악이 드리워진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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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 해설] 어둠과 죄악이 드리워진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셔
  • 유선명 교수(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 승인 2023.12.0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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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110) -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겔 48:35)
유선명 교수(백석대·구약신학)
유선명 교수(백석대·구약신학)

성전은 본래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 생명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모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원형인 광야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웅장한 성전이나, 바벨론 유배 후 소박하게 지었던 스룹바벨 성전이나 이 사실은 동일합니다. 그곳에서는 늘 예배가 드려지고, 죄로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본 성전은 이스라엘 땅에 세워졌었던 옛 성전들과 완연히 다릅니다. 옛 성전에는 ‘바다’라고 불리는 분수처럼 큰 물통에 담긴 물로 예배자의 손을 씻었습니다. 죄를 정결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새 성전에도 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물은 더 이상 예배자를 씻기는 물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이 물은 성전 사방을 채우고 흘러나가 닿는 곳마다 생명이 약동하게 만듭니다. 생수의 강이 건조한 광야를 지나 아라바 사막을 거쳐 ‘죽음의 바다’ 사해로 들어가니, 생물이 살지 못하던 소금 바다에 물고기가 펄떡입니다. 어부들이 몰려오고 ‘엔게디에서 에네글라임까지’ 그물이 펼쳐집니다(겔 47:6~10).

성전이 온 세상을 다시 살게 하기에, 이제 이스라엘 온 땅은 거룩한 땅이 됩니다. 에스겔 환상의 마지막이 땅의 경계와 분배를 다루는 이유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는 이 경계선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몫이니라 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47:13~14)” 가나안 입성 때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토지가 분배되었던 장면이 소환됩니다. 하나님 백성이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 다시 한 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고 기업을 분배받고 성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더 넓은 영토, 더 큰 성전, 그리고 더 위대한 도성이 가슴을 뛰게 합니다. 그 도성의 이름이 놀랍습니다.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겔 48:35)” 역세권, 학세권, 스세권을 따지는 우리 배포로 감당 못할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도시. 하세권!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이것이 그 광대한 에스겔 성전-도성 비전의 결말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은 에스겔이 보여주는 만큼의 영토를 가져보지 못했고, 에스겔의 광대한 성전은 건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예언한 생명의 역사는 ‘때가 차매(갈 4:4)’ 약속대로 오신 그분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왕권의 과시를 위해 세웠던 헤롯 성전에 감탄하는 제자들에게는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13:1~2)”고 일갈하셨지만, 초막절에 성전에 모인 유대 백성들을 향하여서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고 벅차게 외치셨던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머지않아 유월절 어린 양으로 자신을 드리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보내실 성령의 역사를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학자들은 에스겔의 성전을 놓고 묵시문학과 종말론을 논합니다만,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하실 때 종말론과 내세론 강의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믿는 우리에게, 오늘 이 시간, 일어나는 예수 생명의 역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오늘 우리의 현실이고, 그 성전의 생명수는 오늘 우리 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어둠과 죄악이 드리워져 있어도, 이 세상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이고 우리를 보내신 임지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비전을 가슴에 품고 걸어갑니다. 우리가 발을 딛는 이 땅은 낙원도 천국도 아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땅, 임마누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삼마’이기에.

백석대·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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