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신학은 유기적 영감과 축자 영감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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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은 유기적 영감과 축자 영감을 주장한다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3.11.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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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_36) 영감의 성격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성경의 영감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성경 자체의 교리에 대한 내용이 많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정당하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가령 성경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주된 내용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경에 성경 영감에 대한 성경구절이 몇 구절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성경이 영감에 대해 명쾌하고 잘 공식화된 교리를 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런 교리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성경이 제공해 준다는 뜻이다.

일단 영감의 성격과 범위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영감의 성격과 범위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어도 안 되지만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영감의 성격과 관련한 토론에서 등장하는 것은 기계적 영감과 동력적 영감 그리고 유기적 영감 등이다. 영감의 범위와 관련해서는 부분 영감과 사상 영감 그리고 축자 영감 등이 등장한다. 전통적으로 개혁주의신학은 영감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유기적 영감을, 영감의 범위와 관련해서는 축자 영감을 주장한다.

기계적(Mechanical) 영감은 구술설(dictation theory)로도 알려져 있다. 성경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적 영감으로는 사복음서의 상이한 부분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것은 좋으나 실제 성경의 현상과는 맞지 않는 지나친 주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계적 영감이 성경의 기록하는 과정 가운데 신적인 개입에 대해 강조하는 극단적인 입장이라면, 반대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는데 그것이 동력적 영감이다.

동력적(Dynamical) 영감은 성경의 책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있어서 성령의 직접적인 활동 개념을 부인하고, 그 개념을 저자들의 일반적인 영감으로 대치시켜 버렸는데, 이는 그리스도인 일반의 영적 조명과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 영적 조명에 불과한 것이 되게 하였다. 성경은 최고의 진리들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완전하고 오류가능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 이론은 초자연적 요소를 제거해 버리고, 영감 개념을 변형시켰으며, 성경을 순전히 인간적인 산물로 만들어 버리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류의 가능성을 용인하고 있는 잘못된 입장이다.

영감의 성격과 관련하여 바른 입장은 유기적(Organic) 영감이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기록자들을 마치 기록자가 펜을 휘두르듯이 기계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며, 그들이 기록하기를 원하셨던 말씀을 그들의 귀에 속삭여 넣으신 것도 아니라, 그들 자신의 내적 존재법칙에 조화되게 유기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작용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그들의 성격과 기질, 은사와 재능, 그들의 교육과 문화, 어휘, 문체, 스타일 등과 함께 사용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조명하시고 격려하여 기록하게 하셨으며, 그들의 글 쓰는 일에 있어서 죄의 영향을 억누르시고, 그들이 언어를 선택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일을 유기적인 방법으로 인도하셨다. 칼빈을 비롯하여 개혁주의신학자들의 영감에 대한 견해는 유기적 영감설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사도들이 주의 지도를 받았는데 그리스도의 영이 선도자가 되어 “그들이 할 말을 어느 정도 불러 주셨으며”(IV.8.8), “사도들은 성령의 말씀을 틀림없이 받아썼고 따라서 그들의 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한다”(IV.8.9)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표현에 근거해서 칼빈이 기계적 영감을 주장했다는 이해를 하기도 하지만 칼빈이 하나님께서 인간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신 적응(accommodation)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I.13.1)과 함께 이해하면 칼빈의 영감설은 기계적 영감보다는 후대의 개혁주의신학이 받아들였던 유기적 영감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바른 이해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벌코프 <조직신학>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꽤 일반적인 오해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을 우리는 지금도 만날 수 있다. 벌코프가 지적하고 있는 성경의 영감과 관련된 일반적인 오해는 마치 축자적 영감이 필연적으로 기계적이라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축자적 영감과 기계적 영감 이 두 용어는 분명히 동의어가 아니며 영감 사역의 서로 다른 두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다. 축자적 영감은 영감의 범위를, 기계적 영감은 영감의 성격을 가리키는 것이다. “기계적 영감은 필연적으로 축자적인 것이 사실인 반면, 축자 영감이 반드시 기계적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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