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적 경험을 주는 성경,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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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적 경험을 주는 성경,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다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3.11.2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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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_ 35) 성경의 영감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청년 예수 앞에는 세 가지 책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자연, 인간, 성서였다.” 누구의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앞의 두 가지 자연과 인간은 일반계시를 말하고 마지막 성서는 특별계시를 말하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된다. 강조점에 따라 일반계시에만 치우친 주장을 하는 것도 극단이라면 반대로 특별계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입장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큰 깨달음을 얻는다. 이런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계시적 경험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순간의 경험을 계시라고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개혁주의신학에서는 조명이라고 하는 말을 통해 기록된 말씀을 통한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표현하곤 하였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에 대한 토론에 이어 우리는 성경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려고 한다. 성경의 영감과 관련하여 두 개의 성경 구절이 제시되곤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계시와 영감의 관계에 대해 벌코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계시와 영감은 서로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다. 특별계시에 관해 둘 중 하나를 다른 것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성경을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인식하는 것은 성경의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었다고 확신하는데 달려 있다. 그렇지만 이 둘이 아무리 가까운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이 둘을 동일시 해서는 안 된다. “계시의 목적 곧 의도는 지식의 전달이다. 영감의 목적 곧 의도는 가르침에 있어서 무오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계시의 효과는 계시받는 자를 지혜롭게 만드는 것이다. 영감의 효과는 가르침에 있어서 그를 오류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찰스 하지).

영감(inspiration)이라고 하는 것은 문학이나 음악에서도 사용되는 말이다. 문득 떠오르는 시상이나 악상을 영감을 얻는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른바 대자연 앞에 서면 모종의 영감을 얻게 된다. 광활한 우주 공간 안에 인간 존재의 왜소함을 깨닫는 순간이 있기도 하고 무수한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고 한껏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기암절벽에 탄성이 절로 나기도 한다. 영감이 있을 때 일필휘지로 자신의 언설을 쏟아내기도 한다.

성경의 영감에 대한 토론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일반 문학작품에서의 영감과 성경의 영감을 어떻게 구별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문학작품의 영감이나 성경의 영감이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지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면 굳이 성경 영감의 교리를 필요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성경 영감에 대한 교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17세기에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하며 사람들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하게 되었다.

1618년에서 1648년까지 전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던 30년 전쟁은 종교 즉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하기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하였다. 30년 전쟁은 지금 말로 하면 종교전쟁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유대교와 이슬람의 전쟁이라고 한다면 30년 전쟁은 기독교 내부의 전쟁이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잔혹하게 상대를 학살하였다. 종교전쟁은 그 어느 전쟁보다 잔혹하기로 그 악명이 높다. 30년 전쟁에서 군대와 무고한 시민이 450만에서 800만 명이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종교전쟁의 여파로 종교적 권위에 대한 팽배한 반감이 표출되었고 자연히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이루어졌을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로 이어진 가톨릭과의 논쟁에 이어 17세기는 개신교 정통시대가 이어지게 되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논쟁에 있어서는 성경의 어떤 역본을 더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가 핵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세기 가톨릭교회의 권위 있는 성경은 신구약 성경의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Vulgate)였다. 하지만 개신교 종교개혁은 라틴어 역본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된 원래의 구약성경과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의 권위에 호소하였다. 특별히 구약성경과 관련해서는 신약성경이 인용하고 있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역본인 70인역(LXX)과 히브리어 성경인 맛소라 텍스트(Massoretic Text) 중에 어느 것을 더 우선할 것이냐와 같은 싸움이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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